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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가는 가라”

이경우 기자
등록일 2011-08-31 23:58 게재일 2011-08-3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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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흠 시사칼럼니스트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남긴 교훈을 간단히 정리하기는 어렵다. 우선 무상급식과 관련 퍼주기식 무상시리즈가 국가 재정을 거덜내는 복지포퓰리즘이 판을 치게 됐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고, 빈부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보편적 복지가 실시돼야 한다는 국민여론을 보여주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번 투표가 정상적 투표가 아니라는 지적과 함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정치쇼였고, 야당의 대응 또한 민주적 방식이 아니란 주장이 만만찮은 것도 사실이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여당 출신 오세훈 전 시장 낙마의 직접적 계기를 만든 무상급식을 이슈화한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선거당시 경쟁후보 매수혐의가 드러나면서 정작 무상급식의 문제는 뒤로 밀리고 정치공해의 혼탁속에 선량한 국민들 정신만 혼란스럽게 된 것이다. 곽 교육감은 2억원의 거금을 경쟁후보에게 건네준 것을 대가성 없는 선의의 인정이라 주장하지만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 마도(魔都)와 같은 이미지로 변하는 모습에 한숨이 나올 뿐이다. 정말 서울서 벌어지고 있는 이 사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국민들은 재정적자로 국가부도 위기에 몰리고 있는 유럽의 선진국들과 일본의 경우만 보아도 복지포퓰리즘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잘 알고 있다. 이같은 국민의 인식을 전제로 한다면 개표도 못할 만큼 낮은 투표참여 결과를 놓고 서울시민들의 다수가 전면 무상급식을 지지한다고 해석하기에는 문제가 많다. 이번 투표결과를 야권이 승리했다고 자만한다면 큰 오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투표과정에서 많은 국민들은 복지논쟁의 향방보다 정치권의 비민주적 행태에 더 큰 충격을 받고 있다. 투표율이 낮은 것 자체가 이같이 황당한 정치권의 행태에 대한 의사표시일 수도 있는 것이다.

주민이 뽑아준 시장직을 시장업무 수행과 관련된 정책사안에 대해 시장직을 걸고 주민투표를 실시한 오세훈 전 시장은 민주의식을 가진 정치인인지 알 수 없다. 주민이 탄핵을 하지 않는 한 임기만료까지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주민의 의사를 존중하는 자세가 아닐까. 또 자신의 소속 정당과 상의 없이 독자적으로 결정한 투표와 시장직 사퇴에 당의 지원을 호소한 것은 민주정당인의 정도를 벗어난 것이기도 하다. 당의 민주적 의사결정을 거치지 않은 사안에 무조건 따라오라는 식의 정치행보는 가당치 않은 처사인 것이다. 이렇게 할 바에는 왜 당의 공천을 받아 시장에 출마했는지 묻고 싶다.

이번 투표에서 야당이 보인 투표불참 운동도 민주시민으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태였다. 법원이 투표자체를 막지않은 이상 주민들이 투표장에 가서 자신들의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 주민의사 수렴의 정상적 민주절차다. 만약 투표가 불법이라면 법원의 판단에 따라 투표 효력은 당연히 상실되는 것이다. 이같은 투표불참 운동을 벌였던 야당은 과연 민주정당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 투표에 빌미를 준 곽노현 교육감은 정당공천으로 출마하지는 않았지만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가 가담해 서울시민들에게 내세운 이른바 진보진영의 단일 후보였다. 그러나 이번에 야권의 후보 단일화 과정에 2억원의 돈거래 혐의가 드러난 것은 민주선거의 뿌리를 흔든 부도덕한 처사라 할 것이다. 선거에서 유권자의 후보선택권을 금전으로 원천 봉쇄한 행위는 `진보`가 아닌 `부패 수구 퇴보`인 것이다. 앞으로 수사와 사법적 판단에 따라 처리되겠지만 진짜 진보를 희구하는 국민들에게는 엄청난 배신이 아닐 수 없다.

국민들은 이번 투표로 많은 비용과 짜증스런 시간을 보내는 손실을 입었지만 한가지 얻은 것이 있다면 입으로 민주와 진보를 외쳐도 누가 진짜 민주주의자인지, 누가 가짜 진보주의자인지를 가릴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이다.

더 이상 가짜들이 판치는 세상은 없어야겠다. “짜가는 가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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