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은 만찬을 허가한 문화재청이 과연 문화재를 보호할 생각이 있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비판했다. 더욱이 명정전 앞에서 야간에 식사를 한다면 화기사용과 조명, 음식물, 음주행위 등 걱정스런 장면이 많을 것이라며 문화재 보호가 아니라 장사를 했다고 비판했다. 이 일로 당시 문화재청장이었던 유홍준 청장은 구설수에 휩싸여 곤혹을 치렀다.
지난 23일 포항시에서도 그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이날 오후 7시 포항시립미술관에서는 포항지역 모 애향단체의 8월 정기월례회가 열렸다. 150여명의 지역 유지급 회원들이 참석해 만찬을 즐기며 초청 강사의 특강을 들었다.
만찬장으로 제공된 공간은 미술관 로비. 이곳은 전시회가 열릴 때면 작품이 전시되는 설치공간이다. 현재는 1점의 설치작품이 전시 중에 있다. 이곳이 어떻게 애향단체의 정기 월례회 만찬 장소로 둔갑한 것인지 어리둥절해진다. 미술관은 매우 민감한 공간이다. 기온과 습도와 풍향과 소리와 빛까지 모든 환경이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다. 전시 중이거나 보관 중인 미술품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치밀하게 설계된 공간이다. 이곳에서 1시간이 넘도록 호텔 출장 뷔페를 주문해 150여명의 사람들이 저녁식사를 즐겼다. 만찬을 위해 로비에 테이블이 설치되고 테이블마다 화기를 사용하고 조명과 음식물과 가벼운 음주도 있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만찬이다. 미술관에서의 성대한 만찬이라니!
포항시립미술관 관리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살펴보았다. 대관과 관련한 11조와 12조를 봐도 이런 형태의 장소 사용을 명시한 부분은 없다. 미술품 전시 외에는 장소를 내주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포항시립미술관은 애향단체의 월례회 만찬장소로 미술관을 제공했다. 왜 장소를 빌려준 것일까?
포항시립미술관은 스틸 비엔날레를 기획하고 있다. 비엔날레는 시립미술관의 고뇌의 산물일 수도 있다. 비엔날레를 위한 모종의 기획 차원이었다면 정도가 아니다. 원칙을 통해 스틸 비엔날레를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정도가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한다. 이날 특강을 초청 강사는 `문화예술이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포항 만들기`라는 제목의 특강을 했다. 특강 내용대로라면 시립미술관 로비에서 호텔 출장 뷔페를 불러다 만찬을 즐기면서 문화예술을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 가장 아껴야하고 구슬을 다루듯 조심해야 할 미술관에서 떠들썩한 만찬을 열고, 예술을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만찬 장소였던 로비에는 현재 1개의 미술품이 전시 중이다. 기획전이 열릴 때면 로비가 그대로 전시공간이 된다. 그런 민감한 장소를 아무리 로비라 해도 애향단체의 월례회 장소로 150여명의 많은 인원이 모여 만찬을 즐겼다는 것은 포항시민의 수치다. 포항시립미술관은 애향단체 150명의 회원들에게 만찬장소 사용에 따른 이용료를 한 푼도 받지 않았고 미술관 입장료도 공짜로 해주었다. 다음에는 어느 애향단체가 월례회 장소로 빌려달라고 떼를 쓸까 걱정이다.
각설하고, 이번 시립미술관 만찬이 애향단체와 시립미술관의 특권의식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었기를 바란다. 그리고 시립미술관장의 판단이 흐려지지 않기를 바란다. 더불어 염치없이 시립미술관을 만찬 장소로 빌려달라는 제2, 제3의 애향단체가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미술관은 미술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