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전 선전 하는듯하던 한국 선수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TV만으로는 도저히 갑갑함을 채울 수 없었다. 세기적 사건이 이곳 대구에서 일어났는데, 이 역사의 현장에 동참해야 할 것이 아닌가. 당장에 떨쳐 일어나고픈 충동을 일으킨다. 이제 곧 대구스타디움으로 가서 개회식에 참석해야 겠다.
서둘러야 한다. 개회식 시작 2시간 전부터 입장한다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고 복잡한 입장 절차를 예상한다면 미리 서둘러야 했다. 전야제때는 무료 입장권을 5천원을 주고 암표를 사야 했고 입구로 들어가는 입장객의 줄 끝을 찾는 데 30분도 더 걸렸기 때문이다. 물병도 챙기고, 간식은 아무래도 빵보다 과자가 낫겠지? 비 올 때를 대비해서 비옷도 챙기고 바람막이도 넣고... 소풍가는 소년마냥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길거리는 온통 축제의 물결이다. 대구스타디움으로 가는 셔틀버스 안 승객들도 하나같이 상기된 표정이었다.
대구스타디움 주변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아직 시작 할 때까지 시간이 남아있어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잔디밭에 앉아 준비해 온 음식을 먹으며 모처럼 맞은 초가을 햇살을 즐겼다. 시간의 여백을 채워주고 무료함을 달래주는 이런 분위기에서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이 딱이다. 매점에서 닭강정과 맥주도 시켰다. 맥주 한 모금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면서 이런 세기적 이벤트에 참여하는 대구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하고 있다는 나름 위안까지 얻는다. 조직위원회는 그래서 경제 효과가 몇 조 원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곳곳에서 부스럭거리며 닭튀김을 먹는 사람, 햄버거를 먹는 학생들, 맥주를 마시는 아저씨들로 스타디움 안은 왁자했다. 스탠드를 가득 채운 관중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전직 대통령들과 세계적 거물급들을 한자리에 초대해놓고 시작된 개회식에서 김범일 대구시장의 자신에 찬 인사말. 무어라고 하는 내용보다는 어쨌든 가슴 뭉클한 무엇이 느껴졌다. 들어봐 가슴 뛰는 고동 소리를, 모두의 꿈이 하나 되는 순간을. 노랫말처럼 꿈이 현실이 되는 날을 이번 대회가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점점 커져간다. 전야제와는 또다른 감동이었다.
K 팝 가수들의 율동과 열창이 두류운동장을 달궜던 전야제 축하쇼. 그런데 한껏 볼륨을 높인 고성능 앰프의 성능을 비웃기라도 하듯 `형광봉 있습니다` `돗자리 있습니다` 하는 노점상의 호객소리가 리듬을 만들고 있었다. 저 멀리 무대위에서 악을 쓰는 가수와 눈앞에서 땀을 뻘 뻘 흘리며 외치는 뻥과자 사라고 외치는 노점상에게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성과가 고루 미치기를 바랐다.
이 대목에서 느닷없이 지난 번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사건이 떠오른다. 지역의 한 국회의원이 평창 올림픽 유치 소식을 들으면서 축하보다는 뒷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더라는 충격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는 가뜩이나 뒤처진 지역 발전을 위해 온갖 궁리를 동원하고 애를 써가며 지역관련 예산을 확보해왔는데 앞으로는 예산배정의 모든 우선순위가 평창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래서 많은 도시들이 대회 유치에 목을 매는구나.
집으로 오는 길 택시기사는 “대구에서 육상대회를 하니 좋긴 하네요. 오늘 낮 대구 육상대회를 관람온 일본인 관광객들을 동대구역에서 중앙로까지 태웠습니다. 그 관광객들은 한국말로 `고맙습니다` 했는데 괜히 우쭐해집디다” 했다. 그는 이런 대회의 영향이 대구 경제에까지 고루 미치고 대구가 이번 대회를 기회로 훨씬 더 살기 좋은 도시가 되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