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을 중심으로 남쪽은 남촌, 북쪽은 북촌이었다. 남촌의 핵심적 공간은 이른바 신사가 있었던 남산이었고, 북촌의 핵심적 공간은 종로였다. 구한말에 우리나라에 진출한 일본인들이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남산 기슭에 자리를 잡으면서 이곳 일대는 일본인들이 점거를 하다시피 했다. 그들이 청계천 넘어 종로 쪽으로 진출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은 종로, 광화문 일대가 조선 왕조의 역사적 전통이 숨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인들의 상업적 활동의 중심지대이기도 했던 때문이었다.
일제시대에 서울은 용산, 영등포, 성동 쪽으로 확장을 이루면서 1930년대가 되면 이른바 대경성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지만, 그때만 해도 서울이라 하면 여전히 한강 이북, 동대문 안팎을 가리키는 말로 통용되곤 했다. 그래서 지금의 뚝섬 인근만 해도 서울 바깥이라는 통념이 있어 작가 채만식은 광나루 근처에 살면서 서울 바깥에 나가 산다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황석영의`강남몽`에 나타나듯이 1970년대에 서울 강남 쪽이 집중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서울에는 일제시대와는 다른 지리적 이분법이 작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 주민투표는 이 이분법적 지리학을 다시 한 번 선명하게 보여준다.
서초, 강남, 송파의 3개구, 더 넓게는 강동이나, 목동으로 대변되는 양천 정도까지 늘려 잡으면 이들 지역은 서울에서도 특유의 지역 정서를 발산하는 곳이 된다.
지난 번 서울시장 선거 때 이 서초, 강남, 송파 3개구는 오세훈 후보에게 다른 거의 모든 구에서 뒤진 표를 상세하고도 남을 만한 표를 몰아주는 괴력을 발휘했다. 이 선거 개표 방송 때 한명숙 후보 진영은 상당히 늦은 시각까지도 승리를 낙관하다가 그만 패배하고 마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시각은 오후 네 시 십 분.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네 시 기준으로 주민투표 투표율이 19.6%를 기록하고 있다. 그럼 앞에서 말한 3개구의 투표율은 얼마나 될까? 서초구가 27.6%, 강남구, 26.9%, 송파구 23.2% 순으로 나란히 1, 2,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주민투표는 아이들에게 무상급식을 해주느냐 마느냐, 어디까지 해주느냐 하는 문제로부터 며칠 사이에 오세훈 시장이 시장직을 그만두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성질이 완전히 변질되어 버렸다.
투표율이 33.3%를 넘기지 못하면 오세훈 시장은 그 자신이 공언했듯이 시장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10월까지는 시장직을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지만 일단 투표에서 패배하고 나면 일각이 여삼추인 고통의 시간들일 것이다.
누가 오세훈 시장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오후 네 시 남짓한 지금, 오세훈 시장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만큼 민심을 많이 잃은 것처럼 보이는데, 다만 강남, 서초, 송파 3개구의 지지만은 감소하기는 했지만 여전한 것 같다.
필자는 가끔 이 지역의 독특한 정서에 놀라곤 한다. 그리고 이것은 정말 일종의 계급의식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마르크시즘은 계급을 경제적인 위상 차이로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계급은 경제 문제 외에도 어디에나 있다. 또한 몇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독특한 계급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번 주민투표를 통해서도 여지없이 나타나는 서초, 강남, 송파 3구의 독특한 계급의식, 이것은 서울의 지리학을 위해서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할 특이한 현상일 것이다. 서울은 계급 문제가 지리적 이분법으로 나타나는 특이한 현대적 공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