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증기와 백신과 선거권으로/우리들의 행운은 파도를 탄 배처럼 솟았다/우리들은 먹을 것이 넉넉하고 수명도 늘었다/황제와 군주를 퇴위시키고/사람을 보내고 망원경을 사용해서/캄캄한 은하를 탐색했다/그리고 보지 못했던 우리 세포에서/운명과 정령과 유전자를 보았다`
`알다시피 세상은 아직 잔인한 곳/하지만 옛날은 더 심했다/아직까지는 괜찮다`
이 글의 `우리들`이란 물론 인류이다. 그러나 `한반도 사람들`이나 `한국 사람들`로 좁혀서 읽어 보자. 이 땅의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이 벼룩으로부터 해방된 것이 언제였는가? 벼룩뿐이랴. 속옷에도 머리칼에도 바글바글 기생한 그 많았던 이는 어떤가? 1970년대 초반, 내가 고등학생이 된 즈음에야 한국인의 생활은 이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의 시골 마을에는 1960년대에도 애기무덤이 흔했다. 독감이라도 유행한 겨울에는 한 집 건너 한 명의 아기가 죽어나가는 형편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선거권을 언제 처음 행사했는가? 겨우 60년이 조금 더 지난 일이다. 돌이켜보면 1945년 8월15일 이전까지 한반도 사람들은 `짧고 어둡고 자유가 없는 인생`을 살아야 했었다. 일제식민지 시대에는 민족 전체가 주권을 상실하고 있었지만 조선시대의 백성들도 짧고 어둡고 자유가 없는 인생들이었다. 끔찍한 노예제도와 신분세습과 절대빈곤의 굶주림, 이것이 조선시대 우리 백성의 삶의 조건이었다.
선거권으로 상징되는 민주주의에는 피가 묻어 있다. 서양의 민주주의 발달사가 피로 점철됐고, 한국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제대로 된 선거권을 쟁취하는 것이 한국 현대사의 한 기둥을 형성하고 있고, 그 기둥의 빛깔은 붉은 편이다. 동북아시아에는 아직도 `제대로 된 선거권`을 갖지 못한 인생들이 수두룩하다. 대충 잡아도 13억 명은 넘을 것이다. 중국 사람들에게 그것이 없고, 북한 사람들에게 그것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 사람들은 그것을 쟁취하기 위한 대규모 저항운동을 일으킨 적이 없었다. 중국 사람들은 달랐다. 1989년 천안문 사태가 그것이다. 마오쩌둥의 대형 초상화가 걸린 천안문 광장에 100만 명이 운집하여 선거권으로 상징되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부르짖었다. 그러나 중국 사람들에게 `빵`을 선물한 덩샤오핑은 천안문 광장에 탱크를 투입했다. 중국 사람들은 피로 천안문 광장을 물들였으나 선거권 쟁취에는 실패했다. 지난해 옥중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류샤오보는 바로 천안문 광장의 피가 만든 인물이다. 어쩌면 북한을 중국에 비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중국 공산당은 `황제와 군주를 퇴위시킨` 뒤에 현재는 `먹을 것이 넉넉한` 형편인데, 북한 공산당(로동당)은 스스로 황제와 군주를 옹립한 뒤에 현재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구걸하는 형편이다. `알다시피 세상은 잔인한 곳`이라지만 북한 사람들에게 세상은 참으로 잔인한 곳이다. `옛날에는 더 심했다. 아직까지는 괜찮다`라고 위로할 수도 없는 지경이다. 한국은 정쟁이 끊일 날이 없다. 이념적 대립에는 타협이 없다. 그래서 서울시는 아이들 점심 주기 문제로 투표까지 해댄다. 소득격차가 심각하다. 청년실업 해소의 방책을 마련하지 못해서 `이태백`이 넘쳐난다. 재벌들은 2세, 3세 부(富)와 경영권을 대물림한다. 그들은 자본주의 한국의 새로운 황제 집안들이다. 미국, 유럽, 일본의 심각한 재정적자가 한국의 주식시장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경제는 수출 의존도가 너무 높아서 불안하다. 알다시피 세상은 잔인한 곳이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에게는 굶주림도 없고 이도 없고 벼룩도 없다. 유전공학도 제법 잘 나간다. 빵빵한 선거권도 쥐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서로를 위로할 수 있다. “옛날에는 더 심했다. 아직까지는 괜찮다” 다만, `아직까지는`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