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 강남 고급 주상아파트에서 `골든 리트리버`라는 대형 애완견을 키우지 못하게 해달라며 주민이 이웃집 개 주인을 상대로 사육금지 요청을 했으나 법원이 기각했다. 개가 가축이다, 아니다 하는 차원을 벗어났다. 이젠 애완동물의 굴레를 벗고 어엿한 반려동물로 격상했다. 아주 가족이다. 모임에 늦은 친구가 공원에서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여성과 시비가 붙었노라며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여성이 워낙 개를 애지중지, 사람이 앉는 벤치에 앉혀놓고 `우리 아기, 우리 아기` 하며 물을 먹이기에 진지하게 물었단다. 아니, 어쩌다가 개를 낳았어요?
성대 수술도 하고 옷도 예쁘게 입혔다. 그래도 개는 개인데. 흙발로 산길을 헤집고 다니던 개를 그대로 또 품에 안았다가,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이 앉는 벤치에 자리 잡고 앉힌다. 산책길 곳곳에 `개에게 목줄을 해서 데리고 다닐 것`과 `배설물을 함부로 처리하지 말 것`을 경고해 두었다. 그러나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오는 많은 사람들이 개를 배설시키기 위해서임을 금방 알 수 있다. 흉내로 배변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기도 하지만 정작 개가 실례를 하는 것은 숲속이기 일쑤다.
사람들은 손해를 입거나 배신을 당했을 때 화를 내거나 욕을 한다. 이 때 등장하는 동물이 바로 `개`다. 상처를 당한 마음이 상대를 폄하하거나 무시함으로써 위안을 삼는 것이리다. 그 때 개 같은 욕이 들어간다. 그런데 그 개도 오륜이 있다고 호사가들은 둘러댄다. 숙종 임금이 등장하는 궁정 야사에도 그런 얘기가 나온다나? 하긴 강령탈춤에도 그런 대사가 있고 보면 개를 대하는 우리 선조의 의식을 짐작할 수도 있겠다. 옮겨 적어보면 이렇다. 주인을 알아보고 짖지 않으니 (지주불폐 知主不吠) 군신유의요, 털색이 비슷(모색상사 毛色相似)하니 부자유친이요, 새끼를 배면 수캐를 가까이 하지 않음(잉후원부 孕後遠夫)은 부부유별이요, 개 한 마리가 짖으면 동네 개가 모두 따라 짖어대는 것(일폐중폐 一吠衆吠)은 붕우유신이요, 작은 놈이 큰 놈에게 덤비지 않는 것(소불적대 小不敵大)은 장유유서라 했다. 개는 개일 뿐이라는, 개보다 못한 사람들에 대한 패러독스의 결정판이다.
하긴 개보다 못한 사람들도 흔하다. 돈 때문에, 또는 기분이 나빠서 생면부지의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은 흔한 뉴스가 됐고 아예 제 부모도 살해하는 충격적 사건들까지 일어나고 있는 세상이다. 영화에서만이 아니다. 실화도 있다. 그것도 많이. 그런 판에 은혜를 잊지 못해 옛 주인을 기다리는 개의 이야기는 보는 사람들을 가슴 뭉클하게, 때로는 콧등을 시큰하게 만들기도 한다.
매일 작은 길모퉁이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개를 만난 TV 제작팀이 기다려봤다. 그랬더니 그 개는 늦은 밤 버스에서 내리는 할머니를 반갑게 맞이하는 것이 아닌가. 그 할머니는 시내로 허드렛일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개는 할머니가 일하러 갈 때 따라 나갔다가 돌아올 때까지 종일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보다도 더 의리를 지킬 줄 아는 개임에 틀림없다.
대구에서 벌어지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마스코트 살비는 천연기념물 368호 삽사리다. 긴 털에 눈이 가려 앞이 보일 것 같지 않은데도 잘도 내달린다. 총명하고 용감하며 당당하다. 그리고 주인에게 충성심이 강하다. 그 삽사리는 무엇보다 잡귀를 쫓는 영험이 있다고 한다. 아무쪼록 이번 대구 육상대회가 아무런 사고 없이, 또 별다른 잡음 없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때까지 살비도 영험을 발휘할 것으로 믿는다. 그래서 이번 대회가 선수들이 자신들의 최고 기량을 맘껏 펼치고 세계 신기록이 쏟아지는 대회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