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던 이들 중 가장 돋보이는 사람이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다. 각종 여론조사나 정치권에서 그녀의 위치는 독보적인 존재임은 분명하다. 집권당이 한나라당 내는 물론이고 야당까지 박 전 대표의 행보나 정치력에 대해 의문을 품거나, 안티를 거는 등 `견제 및 공격 대상 1호`다. 그런데도 박 대표는 눈도 꿈적 않고 자신의 길만 뚜벅뚜벅 걷는 등 주변인들의 애간장을 태우게 하고 있다. 친이계가 시비를 걸어도, 야당이 딴지를 부려도 그녀의 표정은 변함이 없다.
공격자들을 더욱 열 받게 하는 것은 그의 표현인데, “글쎄요”, “그럴까요”와 함께 얇은 미소를 보이며 자리를 뜬다는 것이다. 그녀의 속내를 들여다보자면 `시간이 가면 내가 대통령이 되는데 굳이 당신들과 다툴 필요가 없다`는 자신감 혹은 오만감이 차 있을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녀의 행보는 갈수록 더 신중하고 조신하지 않을까 하며 대선 전략은 `가치불전(假痴不癲)`이 적절할 것 같다. 때문에 그녀의 측근들도 정제된 언행, 무리수를 두지 않고 활동하며 멘토와 조직 또한 노출되지 않고 있다. `가치불전`은 미련한 `소`를 가장하는 것이다. 이는 중국 병법 36계 중 27계로 오히려 우둔을 가장, `행동`에 나서지 않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박 대표의 현재 자세는 총명을 드러내거나 경거망동하지 않으며, 아주 침착하게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이나 야당의 공격을 차단하기 위해 단어 구사도 함축적이고 대응방법도 소극적이다. 이도 그럴 것이 `다 된 밥`인데 굳이 소모전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정치적 계산과 판단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마치 번개를 품은 구름이 힘을 저축했다가 시기를 기다려서 한꺼번에 에너지를 쏟아 붓겠다는 고도의 전술일 지도 모른다.모르는 체하고 있으나 실은 모두 간파하며 때를 기다리는 `암중모드`로 설정돼 있다는 것이다.
`가치불전`을 가장 적절하게 활용한 이는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사마의(司馬懿)다. 그는 정적 조상(曺爽)을 제거하기 위해 노쇠하여 죽음이 임박한 것처럼 가장해 경계심을 잃게 하여 그를 죽이는데 성공했다. 또 촉의 제갈량이 보내온 부인의 목걸이며 의상을 받고 일부러 본국에 지시를 요망함과 동시에 더욱 수비를 견고히 해 촉군이 피로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
조선시대 흥선 대원군 이하응도 있다.
대원군은 자신의 아들(고종)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이 계(計)를 구사하면서 자신을 철저하게 위장을 했다. 그는 초야에 묻혀 탁월한 묵화 솜씨로 난초를 그려 당시 세도가인 안동 김씨에게 팔았다. 특히 당시 권문세도가들로부터 멸시와 천대, 조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림 한점을 팔 때마다 헤픈 웃음을 보이며 감지덕지했다. 그러나 대원군의 이러한 이면에 치밀하게 계산된 엄청난 밀계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당시 사람들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그의 계산된 전략은 왕인 철종에게 후사가 없다는 사실이었고, 이렇게 되면 왕통은 완전히 끊어지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그러면 다음 왕은 방계(傍系)에서 맞아드릴 것이 분명한데, 대원군은 바로 그 자리에 자기 아들을 앉히려 겨냥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선 후보들이 구사하는 전략은 무궁무진하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위해 `정공법`이던지 `사술`이던지 갖은 수를 다 동원하겠지만 차이는 분명히 있다.따라서 박 대표의 현재 행보는 마치 겨울의 대지가 눈 밑에서 힘을 저축해 봄을 기다리는 것처럼, `가치불전`이어서 여러 사람을 답답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