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靑山)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玉)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한국전쟁으로 굶주림과 아픔으로 점철되던 시절에 비참한 현실과 창 너머로 보이던 의젓한 무등산의 모습을 대비시킨 서정주의 오래된 시이다. 우뚝 서 있는 무등산의 꿋꿋하고 의젓한 모습을 보면 물질적인 궁핍이 사람을 초라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사람의 타고난 본성까지 가리지는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여유있고 넉넉한 태도로 가난을 극복하자는 지혜를 읽을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