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개인투자자 자산 38조원 허공으로
미국 신용등급 하락으로 당분간 환율 상승세 예상
지난 주 코스피는 2,000선 아래로 떨어지고 원·달러 환율은 한때 10원 이상 급등했다.
지난 5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74.72포인트(3.8%) 떨어진 1.943.75로 마감했다. 나흘간 228.56포인트나 빠진 것이다. 코스피가 2,000선 아래로 내려간 것은 일본 대지진 직후인 3월18일(1,981.13) 이후 다섯달 만이다.
외국인은 나흘 연속 물량을 쏟아냈다. 나흘간 2조원 가까이 순매도했다. 전날까지 매수 우위를 보이던 개인도 5일 매도 우위로 돌아서 5천722억원을 순매도했다. 기관이 8천98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순매수로 지수 방어 나섰으나 역부족이었다.
코스닥지수는 전날보다 5.08% 내린 495.55으로 500선 아래로 주저앉았다. 14일(497.18) 이후 16일만이다.
아시아 증시도 일제히 하락했다. 대만 가권지수는 5.58% 폭락해 아시아서 가장 낙폭이 컸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게 이유로 지적됐다. 일본 닛케이지수는 3.72% 하락했다. 홍콩 항셍지수와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도 각각 4.29%, 2.15% 내렸다.
원·달러 환율은 5.70원 오른 1,067.40원에 마감했다. 나흘째 상승세였다. 채권시장도 나흘째 상승세를 이어갔다.
국내 주식시장이 급락하면서 이달 2~5일 개인투자자들이 보유했던 주식관련 자산 중 무려 38조원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연초 이후 직접투자를 한 개인들이 늘렸던 시가총액 25조7천203억원을 나흘 만에 모두 까먹은 셈이다. 더욱이 거래소가 2일부터 5일까지 개인·기관·외국인의 순매수·순매도 상위 종목을 조사한 결과, 하락장에서 개인이 가장 큰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산됐다.
◇3년전의 악몽 재연?
이렇게 되자 3년전 금융위기가 재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그때보다 폭락세는 다소 약하나 외국인 매도세는 결코 약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증시 폭락이 한국증시를 강타하고 그게 다시 외환시장에 강하게 영향을 주는 구조도 비슷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됐던 3년 전 2008년 9월15일은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세계 3위 투자은행인 메릴린치가 뱅크오브아메리카(BoA)로 넘어가고, 4위 투자은행인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은 공황에 빠졌다. 당일 미국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무려 504.48포인트(4.42%) 폭락했다. 하루에 500포인트 넘게 빠진 것은 9.11 사태 직후인 2001년 7월19일 이후 처음이었다.
공포가 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튿날 개장한 한국시장에서 코스피는 90.17포인트(6.10%) 떨어졌다. 선물시장에서는 폭락세를 진정시키기 위해 프로그램 매도호가 효력을 정지하는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증권업종이 12% 넘게 미끄러졌다. 코스피는 9월 중순 1,470대에서 10월 하순 890대로 한달 반 만에 거의 반토막이 났다. 지수는 10월 21~24일 나흘 동안 268.88포인트(22.27%) 빠졌고, 주가는 2005년초 수준으로 돌아갔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강한 매도세로 지수 하락을 주도했다. 9월16일부터 한 달 동안 2조9천300억원어치 주식을 팔았다. 개인과 기관이 1조2천800억원, 1조6천700억원씩 순매수했지만 추락하는 시장을 받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반복되는 사이클
2008년 금융위기 때 증시 전문가들은 적극 진화에 나섰다.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과 채권·펀드 운용책임자들은 9월4일 한국거래소에서 긴급 시황간담회를 열었다.
한 외국계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그 자리에서 “주가는 세계 경기둔화를 대부분 반영했다. 시장은 6개월간 등락을 거듭하면서 바닥을 다질 것”이라고 낙관했다. 자산운용사 고위 간부도 “한국경제를 신뢰해야 한다. 심리적으로 최악인 지금이 오히려 매수에 나설 시기다”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근거 없는 위기설이 금융시장의 공정한 거래질서를 저해할 수 있다면서 합동 단속반을 구성, 일제 단속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간담회가 열리고 채 보름도 지나지 않아 시장은 온통 공포에 휩싸였다. 일반 투자자는 무방비로 손실을 봤다. 미국 더블딥(이중침체) 우려 때문에 시장이 패닉 상태인 요즘, 증권업계는 2008년 금융위기 직전과 비슷한 논조의 분석을 내놓고 있다. 다만 차이는 “지금 싸게 사라”고 권하기보다 “남들 따라서 팔지 말라”고 완곡하게 말을 바꿨다는 점 정도다.
◇이번에는 어떻게?
미국 국가 신용등급 강등은 국내 금융시장에 엄청난 파란을 몰고올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의 재정 위기가 계속되는 중이어서 세계 경제가 더욱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영향은 무엇보다 먼저 증시에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안 그래도 우리 증시는 지난 주 미국 더블딥과 유럽 재정위기 우려로 급락한 상황이다. 우리투자증권 신종환 연구위원은 “시장에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하다. 중요한 트리거(방아쇠)를 당긴 셈이다”고 우려했다.
채권시장은 강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경제의 불확실성으로 다음 주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작아진 것도 채권시장의 강세를 예상하는 근거다. 그동안 물가 상승으로 금리 인상 기대가 높았지만 지금은 금리 동결 전망이 힘을 받고 있다.
미국 신용등급 하락으로 환율은 당분간 상승세를 탈 것으로 보인다. 세계 경제의 중심 국가인 미국의 신용위기가 부각되면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의 통화 가치도 덩달아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 4거래일 연속 상승 마감한 원·달러 환율의 추가 상승이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유로존 국가들의 국채 위기 불안이 증폭되는 것이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보다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연초보다 미국 주가는 2% 하락했지만, 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 `피그스(PIIGS)` 국가에서는 20% 이상 빠졌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국채 금리가 급등한 것이 더 문제일 수 있는 이유다.
/연합뉴스
/종합=윤경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