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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목적을 물고기에서 사람으로…

관리자 기자
등록일 2011-07-25 23:08 게재일 2011-07-2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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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안포항중앙교회 부목사
삶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방향이 잘못되면 가면 갈수록 손해이기 때문이다. 애쓰고 힘쓰는데 결과가 없다. 포항~대구 고속도로로 가다가, 서울을 가야 하는데 부산방향으로 가면 어떻게 될까? 가면 갈수록 멀어진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유태인이 마차를 타고 가는 사람에게 물었다. “가티마지 마을까지는 여기서 얼마나 될까요?” “예, 한 반 시간쯤 가면 됩니다” “미안하지만, 좀 함께 타고 가면 안 될까요?” “예, 타십시오” 그로부터 반 시간이 훨씬 넘었는데도 가티마지 마을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 유태인은 얼마나 더 가야 하느냐고 묻는다. “한 시간쯤 가면 됩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요. 반 시간 거리를 반 시간 동안 왔는데, 어떻게 아직도 한 시간이나 걸린다 말인가요” “예, 이 마차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까요” 삶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살아야 함에 대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아프리카 선교와 탐험의 대업을 성취한 리빙스턴은 “사명이 있는 자는 결코 죽지 않는다”고 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생명이 있는 자는 사명이 있다”는 것이요,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는 뜻이다. 하버드대 24대 총장(1953~1971)이었던 나단 푸시(Nathan Pusey)는 말하기를, “흔들 수 있는 깃발, 믿을 수 있는 신조,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어야 한다” 고 했다. 이것이 목적 있는 삶이다.

마가복음 1장 17절에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첫 제자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은 모두 어부였다. 그들은 갈릴리 호수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하루하루 살았다. 아침 동이 틀 때면 호수로 나가 그물을 깁고 손질하여 호수로 나갔다. “오늘은 고기를 많이 잡아야 할 텐데” 어떤 날은 한 가득 채워 돌아오기도 하였지만, 또 어떤 날은 고기들이 다 소풍을 갔는지 한 마리도 못 잡을 때도 있었다. 광풍을 만나 고생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물고기를 많이 잡는 것, 그것이 그들의 삶의 목적이었다.

어쩌면 오늘 우리의 삶도 이들과 비슷하다. 어떻게 하면 “물고기”를 많이 잡을까 하는 생각이다. 달리 말하면,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까, 좋은 자동차, 좋은 집, 좋은 직장, 명예와 권세를 얻을까, 이것이 목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고기”에 목적을 두고 살아간다. 물고기는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물고기는 배를 채워 주기 때문이다. 물고기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면 목적이 달라진다. 목적이 분명해진다. 물고기에 온통 삶을 던져 넣고 살아가는 예수님의 첫 제자들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말씀을 듣게 된다. 다시 말하면 “이제 너희들의 삶의 목적을 물고기에서 사람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관심은 물고기가 아니라 사람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예수님의 관심이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목적이 바뀐 사람들이어야 한다. 물질과 명예와 권세가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을 살리는 일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교회의 목적도 분명하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백성들, 목적을 찾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천국 열쇠도 없이 인생의 마지막 지점을 향해 가는 사람들. 이 사람들을 찾아가고, 만나고, 회복시키는데 있다. 지금 나는 어디로 가고 있으며,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삶의 목적을 물고기가 아니라 사람에게 두는 새로운 가치의 삶이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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