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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지연에서 여름휴가 보내는 날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07-11 23:30 게재일 2011-07-1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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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환 `ASIA`발행인·작가
2005년 7월20일 아침, 나는 은사인 소설가 신상웅(辛相雄) 선생을 모시고 인천공항에 내렸다. 평양, 백두산, 묘향산 일대에서 열리는 5박6일 일정 `6·15민족문학인대회`의 첫 걸음이었다. 인천공항에서 맨 먼저 이뤄진 일은 어느 선배와의 악수였다. 서로 기억을 더듬으니 대강 20년만의 재회였다. 그는 운동권 현역이었다. “우리가 민주화에 성공한 보람으로 북에도 가게 되네”라고 그가 감격스레 말하기에, “돈도 많아야 합니다”라고 내가 냉큼 받자, 잠시 머뭇거린 그가, “우리가 돈도 많이 냈지”라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해 여름에 내가 찌르듯이 말한 그 `돈`은 남녘 당국과 작가들 개인과 지불한 돈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민주주주와 경제가 어느 궤도에 오른 나라`라고 평할 때의 `경제`를 가리키는 동시에, 그에게 시각의 균형을 요구한 것이었다. 만약 남녘마저 민주주의와 경제 중 어느 하나라도 실패했다면 남북(민족)작가대회는 열릴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북녘에 들어갔더니 `6·15시대`란 신조어를 `통일`처럼 자랑스레 외치고 있었지만, 솔직히 말해 남녘의 `민주주의와 경제`가 밑받침해주지 못했다면 `김대중-김정일 회담`도 성립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나는 판단하고 있었다.

안개 탓으로 한 시간쯤 지체하여 인천공항으로 날아온 북녘 여객기(고려항공)에 올랐다. 시험장의 학생들처럼 남녘 작가들은 휴대폰부터 `따로 보관`을 맡겨야 했다. 문득 드라이아이스가 쏟아졌다. 냉방 바람이 안 나오는 늙은 비행기였다. 어여쁜 여승무원이 `금강산 샘물`을 나눠줬다. 물론 그 샘물보다 먼저 나온 것이 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지 지도”에 의해 생산될 수 있었다는 친절한 기내방송이었다. 작취미성의 나는 샘물을 꿀꺽꿀꺽 마시는 가운데 마음이 착잡했다. `장군님은 너무 바쁘시겠구나. 샘물 생산의 현지지도까지 하셔야 하니` 이런 입맛을 다시는 동안, 고려항공은 훌쩍 휴전선을 넘어섰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북녘 영공에 몸을 들인 순간, 나는 작가로 돌아갔다. `문학은 정치에 종속될 수 있는가?` 이 질문이 나의 뇌리를 지배했다. 북녘 작가들은 옳다고 박수를 칠 테지만, 남녘 작가들은 설령 1980년대 한때 노동해방문학에 복무한 경력을 지녔더라도 마치 `문학을 단두대에 올려도 좋은가?`라는 심문을 당하듯 억세게 도리질을 칠 텐데, 이거야말로 현재 `남과 북` 작가들 사이에 가로놓인 `문학의 철조망`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방북 사흘째. 프로펠러 비행기가 삼지연 비행장에 내려줬다. 숲이 우거진, 해발 1천500m가 넘는 고원지대. 삼지연이라는 아름다운 호수도 있다고 들었다. 나는 긴장을 죄었다. 삼지연에 가서 여태껏 모르고 살아온 모국어의 원초적 숨결을 듣고 싶었다. 그것을 들어야만 작가의 방북은 정치회담이나 관광과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내 판단이었다. 삼지연 앞은 텅 비어 있었다. 10만 평짜리 광장이 수많은 나무들을 흔적 없이 잡아먹은 것이었다. 평양의 `김일성 광장`처럼 돌로 덮은 광장, 그 안쪽 끄트머리의 한복판에는 거대한 동상이 떡 버티고 있었다. 15미터짜리 `김일성 수령 구리동상`이었다. 북녘 안내원이 1979년에 완공한 `위대한 사업`이라고 유창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에게 내가 물었다. 삼지연은 어디에 있느냐고. 그가 답했다.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 뒤편이 삼지연입니다. 그러나 이미 설명을 들으셨겠지만 못가에 나가는 것은 안 되는 일입니다” 땡볕이 쏟아지는 광장. 그나마 가장자리에는 나무 그늘이 있었다. 친구들이 `장군님의 것 같다`는 색안경을 낀 나는 슬금슬금 나무 그늘을 따라 걸어갔다. 기어이 삼지연을 보고 싶었다. 과연 광장의 끝에는 삼지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못가를 따라 거닐고 싶었다. 다음 일정들을 취소하고서라도 나를 그 못가에 풀어준다면….

그러나 나는 광장을 한 발작도 벗어날 수 없었다. 북녘 안내원이 못 나가게 지키고 있었다. 평양의 고려호텔에서 현관 밖으로 나갈 수 없게 한 것은, 아무리 그것이 어처구니없더라도 인민들과의 접촉을 금지하는 조치였다고 이해를 해준다지만, 삼지연 못가를 거닐지 못하게 하는 것은 도대체 어떤 접촉을 금지하는 것이란 말인가? 자본주의적 소비생활에 너무 익숙한 남녘 작가들이 삼지연을 훼손하기라도 한단 말인가? 내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끓여봤자 소용없는 짓이었지만, 그래야만 삼지연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삼지연에 물고기처럼 살고 있을 모국어의 원초적 숨결을 듣지 못하고 말았다. 땡볕이 쏟아져도 섭씨 28도 이상을 허용하지 않던 개마고원 삼지연. 어느 날에야 그곳에서 참으로 고요한 여름휴가를 보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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