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재미난 시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07-08 23:33 게재일 2011-07-08 22면
스크랩버튼
조현명시인
“소낙비는 오지요 /소는 뛰지요 /바작에 풀은 허물어지지요 /설사는 났지요 /들판에 사람들은 많지요.”

김용택 시인의 `이 바쁜 때 웬 설사`라는 시다. 이 시가 재미난 건 설상가상 안절부절 어찌 할 수 없는 코미디 드라마 한 장면이 상상되기 때문이다. 요요요로 끝나는 운율 또한 절묘하다. 재미난 시로 말하면 수두룩하다. 시를 처음 감상하려고 할 때 이런 시들을 먼저 감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미숫가루를 실컷 먹고 싶었다 /부엌 천장에서 미숫가루통 훔쳐다가 /동네 우물에 부었다/사카린이랑 슈거도 몽땅 털어넣었다 /두레박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미숫가루 저었다 /뺨따귀를 첨으로 맞았다” 박성우 시인의 `삼학년`이란 시다. 상상력이며 어린시절의 장난끼 순수한 동심 같은 것이 뒤섞여 한바탕 웃고 싶어지는 그런 시다.

시는 언제나 근엄하고 말들이 비비꼬여서 어렵다고 생각이 드는 때도 있었다. 국어시간이면 은유법이나 직유법이 적용되었다든지 공감각적 이미지를 사용했다든지 하면서 따져보던 기억이 난다. 알고 보면 모두 시를 시처럼 감상하지 않고 따져 보아야 할 아주 까다로운 대상물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에 시는 매우 고전적인 정장을 한 낯선 신사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쉽게 다가설 수 없었던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이제 앞의 두 개의 시도 그렇지만 지금 그 같은 생각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은 게 이글을 쓰는 목적이다.

지금 울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일근 시인의 `쌀`이란 재미난 시를 읽어보자. “서울은 나에게 쌀을 발음해 보세요, 하고 까르르 웃는다 /또 살을 발음해 보세요, 하고 까르르 까르르 웃는다 /쌀이 열리는 쌀나무가 있는 줄만 알고 자란 그 서울이 /농사짓는 일을 하늘의 일로 알고 살아 온 우리의 농사가 /쌀 한 톨 제 살점 같이 귀중히 여겨 온 줄 알지 못하고 / 제 몸의 살이 그 쌀로 만들어지는 줄도 모르고 /그래서 쌀과 살이 동음동의어라는 비밀을 까마득히 모른 채 /서울은 웃는다” 서울사람들 앞에서 `쌀`을 `살`이라 발음했다가 돌아온 웃음을 받아본 경상도사람이면 이해할 것이다. 웃음이 조금 이제 비아냥거림으로 변한 걸 느낄지도 모르겠다. 풍자 비꼼 이렇게 말해지는 이 시의 기법은 이미 오래전 김병연(김삿갓)선생이 길을 연 지 오래다. “천황씨가 죽었나 인황씨가 죽었나 /나무와 청산이 모두 상복을 입었네 /밝은 날에 해가 찾아와 조문한다면 /집집마다 처마 끝에서 눈물 뚝뚝 흘리겠네”, `눈`이라는 시다. 임금의 죽음 그리고 흰 상복, 눈물 그것이 눈이 온 풍경과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이런 비유는 재미도 재미지만 읽는 사람이 서늘한 것을 느끼게 한다.

재미난 것에서 점점 의미를 담아 깊어지는 것도 같은데 계속 따라오기 바란다. 이진수 시인의 `부른다는 말 속엔`이란 시를 읽으면 재미도 재미지만 무언가 마음 깊은 곳에 다른 것이 올라 올 것이다. 시란 재미만으로 된 것이 아니어서 무엇인가 그 속에 다른 것이 있다. 그것을 읽어 보자. “오랜만에 만났다. 우여곡절 끝에 아들을 얻은 친구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또 보자 악수하면서 아이 돌 때 잊지 말고 연락해 그래야지 그럼 당연히 불러야지 하던 그때 아, 내 속 어딘가에 갑자기 화악 불 들어왔다 불러야지 하는 말이 이상하게도 불 넣어야지 하는 말로 들렸던 것이다 와서 술도 마시고 노래도 좀 불러라 했을 때 그 불러라 하는 말도 꼭이나 불 넣어라 하는 말로 들렸다 불러라 노래 불러라 하는 동요가 생각나고 불 넣어주면 금방 타오를 듯한 응원가를 아이 앞길에 훅훅 불러주고 싶었다//부른다는 말이 이렇게나 /뜨겁다는 걸 알게 해준 친구야 /사람 사이만한 아랫목이 어디 있겠니 /불 지피지 않으면 /냉골이 되는 거기까지 /가마, 꼭 가마” 그러니까 감동이 재미였다. 시 속에 들어 있는 그 무언가 그것이 바로 감동 그리고 재미라고 이진수 시인은 `부른다는 말 속엔`이란 시로 말해주었다. 마지막으로 그러니까 감동으로 뭉친 그래서 재미난 정장 입은 고전적인 시를 하나 소개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 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아무도 이 시의 제목을 모르리라고는 생각지 않으면서….

종합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