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도 드디어 정치적 억압이나 절대빈곤의 억압에서 해방된 최초의 세대가 출현했습니다. 역사 이래 처음입니다. 일본, 중국, 미국으로 번져 나가는 한류 대중스타들의 독창성이나 발랄함은 공공적 억압에서 해방된 상상력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들이 불행합니다.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신조어로 정착됐는데, 청년실업이 그만큼 심각한 사회문제입니다. 억압에서 해방된 그들이 `이태백`(이십대의 태반은 백수)이라니,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겠습니까? 청년실업, 이태백, 이것이 이념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이념화는 좌경화 아니겠습니까?”
박 명예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받았다.
“좋은 지적이오. 이념에는 사상형도 있지만 생계형도 있는 겁니다. 정부나 청와대도 나름대로 심각한 사회문제로 보고 있을 텐데, 문제는 근본적인 대책이 서야 한다는 거지요. 정부, 전경련, 중소기업협회, 상공회의소 등이 머리를 맞대고 우리 경제가 청년실업을 해결하지 못하는 근본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연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산업 구조, 경제 구조에 근본 원인이 있을 수도 있어요. 산업이나 경제 구조까지 조정하려면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이 요구되는데, 근본 원인을 찾아내서 그걸 들고 노동계와도 허심탄회하게 대화해야 합니다. 청년실업 문제가 촛불시위가 되고 과격시위가 되면, 그때는 이미 대책이 없는 것이거나 대책이 늦어진 것이지요. 그런 사태로 발전되지 않도록 더 늦기 전에 철저히 대비해야 합니다”
`반값 등록금`을 위한 촛불시위가 열리고 있다. 학부모도 가세하는 중이다. 정치세력이나 이념세력도 개입한다. 정치세력이나 이념세력이 끼어들면 안 된다고 경계하지만, 그들이야말로 본업의 하나가 그것인데 무슨 재간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실제로 `반값 등록금`을 사회적 핫이슈로 부각시킨 장본인도 한나라당 신임 원내대표였고, 선방을 얻어맞은 민주당 대표가 날쌔게 뛰어들었다.
과연 문제의 본질이 `반값 등록금`인가? 세금 6조원이 들든 말든 용한 조화를 부려서 용케 예산을 확보하고 등록금을 절반으로 꺾어주기만 하면 대학생들의 불안감과 좌절감이 씻은 듯이 사라지게 되는가? 월급 88만원짜리 `이태백` 대다수가 직장다운 직장에 정규직으로 등록할 수 있게 되는가?
여야 정치인들이 `반값 등록금`에 정치적 생명을 건 것처럼 아우성치는 모습이 의아스럽기만 하다. 그 빗나간 포퓰리즘의 현실 진단에 대하여 고개를 돌리게 된다. 대교협에 모인 총장들도 딱해 보이긴 마찬가지다. 재단이사장에겐 고개를 조아린 채 제자들에겐 눈을 부라리는 모양새다. 드디어 감사원이 큰 칼 작은 칼 다 빼들었지만, 정부와 국회는 먼저 문제의 본질을 솔직히 알리고 해법의 순서를 국민에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첫째, 대학 등록금이 사회적 문제로 뜨겁게 달아오른 이 기회에 재단 전입금을 한 푼도 안 내거나 터럭만큼만 내놓는 한국 사립대학 재단의 뻔뻔스런 작태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방책을 제시하고, 학생 등록금을 적정수준보다 훨씬 초월하여 적립금 따위로 따로 제쳐두는 한국 사립대학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방책을 제시해야 한다.
둘째, 초등학교 6학년은 세 학급인데 1학년은 한 학급밖에 안 되는 급격한 인구감소에 정확히 대비하는 수준에서 현재 `매우 과잉 공급된 대학들`을 구조 조정할 특단의 정책을 제시하고, 그로 인한 사회적 격변에 대처할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위의 두 가지를 바탕으로 `이태백`의 청년실업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산업 구조나 경제 구조에서 비롯되고 있다면 그것을 조정할 올바른 대책이 세워져야 하고, 그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 젊은 노동인구 양성의 문제를 대학의 구조 조정과 직결시켜야 한다.
이러한 세 가지가 `반값 등록금` 문제의 본질이며 해법의 방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등록금을 반값 아니라 100만원만 깎아도 취업의 문만 활짝 열린다면 어느 대학생이 등록금 때문에 삭발하고 촛불 들겠는가? `이태백`을 해결하지 못하는 한 `반값 등록금`은 그것을 들고 나온 정치인에게 무서운 부메랑으로 돌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