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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내 사대부집 연경당과 행랑채

영남이공대 교수
등록일 2011-06-02 20:51 게재일 2011-06-0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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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연경당 장락문과 행랑채<사진 위. 석함에 새겨진 토끼<아래
요즘같이 세상사 번잡할 땐 한번쯤 궁궐에 입궐해서 세상 번뇌를 좀 씻어보면 어떨까 싶다. 이런 분위기에 딱 맞는 곳으로 창덕궁 후원에 위치한 연경당(演慶堂)을 추천한다. 연경당은 조선왕조 제23대 순조 28년(1828)에 효명세자(1809~1830)의 청으로 왕실에서 왕과 왕비가 신하들의 생활을 체험하기 위해서 사대부 주택을 모방하여 궁궐 안에 지은 집이다. 연경당은 궁내에 있으면서도 단청도 하지 않은 백골집으로 고졸(古拙)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는 건물로 현존하는 조선시대 주택 중 가장 아름다운 상류주택이라 할 수 있다. 이 집은 창덕궁 후원의 주합루(宙合樓)가 서있는 동산 뒤쪽 비교적 넓은 터에 자리 잡고 있다.

여느 사대부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연경당 앞 넓은 터에는 느티나무 고목이 서 있다. 여기서부터 주위를 눈여겨보면 돌로 물길을 꾸민 명당수가 연경당 앞을 멋지게 휘돌아 나가고 있는 것도 보이고, 연경당 가는 길에 놓인 석함도 보인다. 그 중엔 웬 짐승이 새겨진 석분이 눈에 띠는데 자세히 보면 토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석분에는 두꺼비가 새겨져 있는데 세 마리는 나오려고 하고 한 마리는 도로 들어가려고 하는 형상이 네 귀퉁이에 각각 새겨진 석함도 볼 수 있다. 여기에 새겨진 토끼와 두꺼비는 모두 달을 상징하는 동물들이다. 달나라 옥토끼는 누구나 익숙하지만 두꺼비는 좀 낯선 것 같다. `예`라는 영웅 설화에 항아가 천제의 벌을 받아 두꺼비가 되어 달나라로 쫓겨나는 얘기가 있다. 이때부터 동양에선 두꺼비가 달을 상징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여튼 석함에 새겨진 토끼와 두꺼비를 통해 연경당은 천상의 달나라를 상징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 앞을 흐르는 개울은 은하수가 되고, 그 다리는 영락없이 오작교가 된다.

이 다리를 지나 만나는 연경당의 대문 이름은 `장락문(長門)`이다. 신선들이 사는 궁이 장락궁이니 연경당은 곧 신선들이 사는 곳이 된다. 장락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서면 다시 두 개의 문이 있다. 수인문(脩仁門)과 장양문이다. 하나는 사랑채로 드는 문이고 하나는 안채로 드는 문이다. 장양문은 수인문 보다 크고 솟을대문으로 되어있다. 흔히 이것을 두고 남존여비 사상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솟을 대문이 남성적이라면 평대문은 여성적인 구조다. 오히려 문의 모양을 달리하여 단조로움과 지루함을 피하면서 남성과 여성의 건축공간을 구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남녀 차별보다는 남녀구별이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 또한 주인 양반이 초헌을 타고 드나들어야 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대문에 연접한 바깥 행랑채엔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묵는 법이다. 그 오른쪽 끝에는 마굿간과 가마간이 있고, 왼쪽 끝에는 바깥 변소, 즉 외측(外厠)이 있다. 그 안을 자세히 보면 칸막이 없이 바닥에 구멍이 두 개 뚫려 있다. 아마도 하인들은 칸막이도 없이 한꺼번에 볼일을 보게 한 것일 것이다. 몸채에 사는 사대부집 양반과 문간채에 사는 하인의 차별을 측간에서 엿볼 수 있는 것 같다.

/영남이공대 교수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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