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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 핀 꽃은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

이창훈 기자
등록일 2011-05-27 23:22 게재일 2011-05-27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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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훈/대구본부 부장
폭풍노도가 지나갔다. 거친바람과 사나운 파도가 지나간 자리는 황량하면서 치울 엄두가 나지 않는 쓰레기 더미, 곳곳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나야 정상이다. 하지만 고요하다, 그냥 쓰나미가 오다 중간에 다시 리턴한 것처럼 정적만이 있을 뿐이다. 집으로 귀가하지 않은 애를 찾아 한바탕 난리를 친 뒤, 근처 친구집에 있었다고 한마디 하며 슬쩍 들어온 애를 보고 이제 모두 안심하고 늦은 잠을 청하는 기분이랄까.

대구·경북·경남은 거의 반 년 이상을 다른 문제를 제쳐두고 신공항을 놓고 씨름을 벌였다. 이 와중에 경상도의 민심은 대구와 부산을 중심으로 갈갈이 찢겨진 채 속된 말로 영광없는 상처덩어리만 남았다.

신공항 발표를 앞두고 대구시장은 시장직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결단성 멘트도 남겼다. 그리고 신공항 무산 발표후 밀양시장은 시장직을 사퇴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공항 발표 두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 달라진 건 아무도 없다. 누구하나 책임지고 사퇴한 사람도 없었으며 그렇게 강경했던 밀양시장마저 슬그머니 사퇴서를 철회했다. 그리고 끝이었다.

지난 16일 대구·경북이 고대했던 과학벨트마저 다른데로 날아갔다. 지사는 부랴부랴 단식농성에 들어갔고, 삭발 또한 이어지는 등 작은 소동이 있었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폭풍이 있었냐는 듯 평온이 올 걸로 예상된다.

여기서 냉철히 현실을 한번 짚어보자. 대구·경북민은 신공항 무산 결정 후 현 정부, 지역민이 선택한 한나라당에 이를 갈았다. 두고보자고. 그리고 기다리던 날이 왔다. 지난 4·27재보선. 하지만 결과는 역시나였다. 공항같은 지역 이슈가 없었던 강원도, 분당 등의 도·시민은 야당을 찍었다.

하지만 대구·경북·경남은 어땠는가. 김해시민은 김태호 한나라당 후보를, 대구경북의 기초의원 4곳 모두 한나라당이 독식했다. 역시 위대한(?) 대구·경북민이었다.

선거과정에서 대구의 한 후보는 “신공항 무산으로 힘이 많이 들 걸로 예상했다. 하지만 경상도 사람답게 시간이 가면서 역시나 한나라당쪽으로 오더라. 지역민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경상도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대체로 보면 처음에는 죽일 듯이 흥분하다가 시간이 좀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그저 그런 식이다. 쉽게 말해 양은냄비 기질이 강해 식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는 식으로 타지 사람들한테 인식되고 있다. 이러니까 현 정부와 여당이 지역민을 우습게 본다고 하면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신공항 무산후 이명박 대통령은 경상도 사람은 욱하는 성격을 바꾸고 현실을 냉정히 봐야한다고 충고했다. 이에 앞서 권영길 국회의원도 대구·경북을 보수꼴통이라고 해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하지만 모두 그때 뿐이었다. 잠시 흥분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는 우리의 잘못된 선택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손해도 많이 봤다.

노무현 전 대통령시절 대구 동구에 출마한 이강철 후보의 패배도 하나의 사례가 될 것 같다. 그는 당시 권력 실세로서 엄청난 공약을 했고, 그것을 실현시킬 파워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끝내 한나라당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패배와 함께 그의 지역 발전 공약도 물건너 갔다.

그래서 감히 말한다. 적어도 지난 재보선에서는 대구·경북민이 뭔가 보여줬어야 했다. 비록 기초의원이지만 과감한 결단으로 대구경북도 할 수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였어야 했다. 우리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민중은 안중에도 없이 오직 공천따기에만 혈안이 돼 있는 후보자의 가슴에 비수를 던졌어야 했다. 이렇지 못하기 때문에 중앙무대를 비롯, 각처에서 `양은냄비`니 `보수꼴통`이란 사전에도 안 나오는 용어로 무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후면 총선과 대통령선거로 이 나라가 다시 한바탕 소용돌이 칠 것이다. 지금까지는 차치하고라도 이제부터라도 정서에 얽매이지 않고 실리를 챙기는 결단력을 보여야 한다. 선거 후 잘라버린 손가락이 낙동강을 둥둥 떠다니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말에 핀 꽃은 열매가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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