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는 엔딩 크레딧이 펼쳐진다. “어떤 이의 죽음도 나 자신의 소모이려니, 그러니 묻지 말아라,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느냐고. 그 종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므로” 존 돈의 시다. 혼자서 완전한 인간은 없고 우리 모두는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5월, 수많은 날들이 지나갔다.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입양의 날 부부의 날, 가족 간 화해하고 서로 사랑하는 가정을 재건하자는 목소리는 우리가 그렇게 특정한 날을 정해서 기념해야 할 만큼 하루하루 가족의 의미를 지워가며 살아가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외로운 이웃들에게 사람의 정을 배달해주는 이웃들이 5월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힘들고 외로움과 쓸쓸함을 버텨내고 있는 우리 주위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사랑의 손을 내미는 것은 또 하나의 연대다.
할머니는 한사코 우유 3팩을 건네 주셨다. 그냥 도시락을 받기가 미안하다며, 고맙다며 전해주시는 할머니의 호의를 거절하지 못했다. 달서구 한 주택가 2층집 단칸 골방에 혼자 세 들어 사시는 할머니는 지난 번 도시락을 깨끗이 씻어 보자기에 싸서 되돌려 주셨다. 동사무소에서 주는 기초생활수급비와 폐지를 주워 팔아 모은 몇 푼이 할머니의 생활비인 듯하다고 자원봉사에 나선 아주머니들은 말했다.
조그마한 방에 강아지와 함께 생활하시는 한 할머니는 언제나 아무런 표정이 없다고 했다. 한 집에선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어 도시락을 대문 앞에 두고 나왔다. 도시락 배달을 주인집에서 노골적으로 싫어해서 벨을 누를 수도 없다는 것이다. 단독주택이 밀집해 있는 한 골목길에서는 길쪽에 붙은 쪽문을 열자 바로 주방 겸 거실인 비좁은 방이 나오는 집도, 대문을 열고 나서도 한참을 걸어 들어가 다시 2층으로 올라가야 마주치는 방도 있었다. 그곳에는 생활능력이 없는, 그러나 한 때는 가족들과 미래를 꿈꾸었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쓸쓸히 방을 지키고 있었다.
가정의 달이라는데, 모두가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고, 환하게 웃음 짓는데 우리 주위에는 당장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이웃들이 많이 있다. 자식이 있으나 보호받지 못하고 보호해줘야 할 가족이 있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 대구시에 따르면 자치단체로부터 생계비를 지원받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대구시내에만도 10만7천여명이나 된다고 한다. 홀몸 노인이 5만6천명이 있고 조손가정도 800세대에 이른다.
40, 50대 주부들로 모인 자원봉사자들은 벌써 7년째 주 2회 반찬을 장만해서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그들 모두 삶이 바쁜 우리의 보통 이웃들이었다. 몇 푼의 성금과 종교단체의 지원금과 그들의 성금으로 반찬거리를 사서 직접 국과 김치 등 반찬을 만들어 전하고 있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남을 위한다는 것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라는 이타주의는 아름답다고밖에 표현할 길 없다. 윤리적으로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 자신이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니 남을 위한 선이 결국은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철학적 결론에 도달한다. 리처드 도킨스가 주장했듯 결국은 이기적 행동일 것이다.
도시락 하나로 홀몸노인이나 한 주일의 생계를 도움받는다면 자원봉사자들은 영혼을 위로받고 있었다. 도시락 하나에 거창하게 인류가 등장하기엔 왠지 쑥스럽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도시락 하나가 한 사람을 인간답게 만들어주고 우리 사회를 더 따뜻하고 아름답게 소통시켜 주는 것도 사실이다. 도시락 하나가 아득하게 잊어버렸던 가정의 온기를 담아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냥 도시락 하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