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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도복싱 ... 신 해 욱

관리자 기자
등록일 2011-05-10 21:32 게재일 2011-05-1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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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있다는 걸 안다

빈틈을 노려 내가 커다란 레프트 훅을 날릴 때조차 당신은 유유히 들리지 않는 휘파람을 불며 나의 옆구리를 치고 빠진다

크게 한 번 나는 휘청이고

저 헬멧의 틈으로 보이는 깊고 어두운 세계와 우우우, 울리는 낮게 매복한 소리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완악한 힘에 맞서 당신을 안아버리는 이 짧고 눈부신 한낮

부러진 내 갈비뼈 사이의 텅 빈 간격으로 잠입하는 당신에 대해

당신의 그 느린 일렁임에 대해

나는 단지 말하지 않을 뿐이다

천천히 저녁이 열리면

이 헐거움을 놓치지 않으며 길고 가늘게 드러나는 당신,

빈틈을 노려 내가 복부를 공격할 때조차 당신은 정확히

내 팔 길이만큼만 물러서면 나를 조롱한다. 당신이

거기 없다는 걸 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정체불명의 존재들과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실존하는 것들, 어쩌면 그것은 눈이 보이고 만져지고 들리는 실존의 대상보다도 더 질기고 분명하게 우리에게 다가오고 작용을 할 때가 있다. 섀도복싱이란 가상의 대상을 염두에 두고 혼자 그 가상의 대상과 공격하고 방어하는 것을 말하는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딪히고 싸우는 것 중에는 이런 것들이 허다하다. 진지하게 최선을 다해 싸워야하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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