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행사에는 기악제공 종회의 이건수 회장과 후손들을 비롯해 지역유림과 각급 기관단체장 등 250여명이 참석했다.
춘향제는 초헌관에 성백영 시장, 아헌관에 권영창(정문연 세종실록 교열위원), 종헌관에 안영선(공의 배위의 후손), 집례에 이수필(전 예천군의원), 대축에 이수일씨, 찬창에 이규용(판사공 종회장)씨 등이 종사했다.
이축 공은 임란 당시 함창현을 중심으로 영남 북부지방에서 의병 선봉장을 맡아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공의 이러한 공적을 기리기 위해 누수가 심한 사당을 지난 2008년 2월 총 사업비 3억 5천만원(도비 1억, 시비 1억, 자부담 1억 5천)을 들여 22.32㎡의 한식기와 건물로 개축했다.
이 축(李 軸)선생의 자(字)는 덕재(德載)이고, 가악재는 호다.
본관은 성주(星州)로 함창현(현재 이안면 흑암리)에서 장예원 판결사(종2품)인 부 응춘(應春)과 모 함창 김씨 사이에 태어났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7월 30일에 은척면 황령사에서 상주지역 최초로 창의진(昌義陣, 의병)을 조직해 선봉장(이때 의병대장은 이봉)을 맡으면서 매복전으로 함창과 가은 지역에서 왜적을 크게 무찔렀다.
특히 1592년 11월에는 당시 군사 전략상 가장 요충지였던 당교(唐橋)전투에서 왜적 100여 명을 사살했고 1593년 2월에는 상주 가판관 정기룡(鄭起龍)과 연합전선을 펼쳐 대승을 거두는 전과를 올렸다.
이러한 전공을 인정 받아 부여현감에 제수(除授)됐고 옥천군수(종4품)로 부임해서는 선정을 베풀어 송덕비가 세워졌으며 훈련원 정(정3품, 당하관)에 오른 뒤 1605년 4월 선무원종공신녹권 1등에 책록됐다.
/곽인규기자 ikkwack@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