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침조사 당시 해병부대 사단장은 공교롭게도 필자의 군 초군반 동기생이었다. 작년에 해병대사령관직을 끝으로 전역했는데 얼마 전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해병대 창설 62주년 기념식장에서 만나 일월지 인도교에 대해 얘기를 나누면서 무척 안타까워했다. 물론 문화재는 원형보존이 원칙이다. 이미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일월지는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경복궁 후원에 위치한 향원지(香遠池)의 취향교(醉香橋)처럼 한국 고유의 고요하면서도 단아한 아름다움을 지닌 인도교로 교체하는 것이 문화재 주변경관에 더욱 잘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제8대 아달라왕 4년(157)에 영일의 동해 바닷가에 있는 일월지에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라는 부부가 살았는데, 어느 날 연오가 바닷가에서 해조를 따고 있던 중 바위 하나가 물위에 떠오는 것을 보고 신발을 벗어 놓고 올랐더니 바위는 바다건너 일본으로 갔다고 한다. 이를 본 일본 사람들은 범상한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고 그를 왕으로 추대한다. 그 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세오 역시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연오의 귀비(貴妃)가 되었다고 한다.
연오랑ㆍ세오녀 신화는 하늘의 일월(日月)과 관계가 있는 이야기다. 연오와 세오의 이름에 모두 까마귀를 나타내는 오(烏)자가 들어가 있다. “오”자는 태평어람과 고금운회에「日中有三足烏」라는 글귀로 미루어 예부터 신성시 해오던 영물인 태양 속에 살고 있다는 세발 달린 까마귀를 뜻한다. 까마귀는 태양 속에 살고 있는 신령스런 동물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태양신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연오와 세오의 이름은 태양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설화는 우리나라에서 문헌에 전하는 거의 유일한 천체신화(天體神話), 일월신화(日月神話)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해병부대에서 일월지 관리를 잘하여 연지(蓮池)도 조성하고 주변에 많은 꽃나무와 산책로도 만들어 놓았다. 해병부대에서 가끔 개방도 한다고 하니 1850년 전의 연오랑과 세오녀를 생각하며 영일 일월지를 한번쯤 탐방해보는 것도 뜻깊을 것이다.
/영남이공대 교수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