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황강댐의 물을 갑자기 방류하여 경기 연천군 임진강변에서 야영 또는 낚시 중이던 민간인 6명이 참변을 당했다.
이 땅에 강둑을 막아 물 공격을 한 군사 작전은 고구려의 장수 을지문덕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은 고구려가 전략 요충지인 요서 지방을 선제공격한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수양제는 고구려가 돌궐과 내통하여 수나라에 대항하는 것을 알고 100만 대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침공하였다.
수나라 군사들은 요하를 건너 수양제의 직접 지휘 아래 고구려의 요새인 요동성을 포위 공격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의 성은 단단하였고 군사들은 일치단결하여 힘써 싸웠으므로 쉽게 함락되지 않았다.
그러자 수양제는 조급해져서 다시 별동대 30만 명을 압록강 서쪽에 집결시켜, 단숨에 평양성을 공격하려 하였다.
이때 고구려 장수 을지문덕(乙支文德)은 거짓 항복하여 적진에 들어가서 적의 동태를 정탐했다. 적진에서 돌아온 을지문덕은 수나라 군사들에게 군량이 많지 않음을 파악하고 청야(淸野) 작전으로 대응하였다. 수나라 장수 우중문이 압록강을 건너 쳐들어올 때, 을지문덕은 계속 거짓으로 패한 척하면서 적들을 깊숙이 유인하였다.
적장은 을지문덕의 유인 작전에 속은 것도 모르고 살수를 건너 평양성 북쪽 30여리 지점까지 쳐들어왔다.
이때 화살에 매인 격문이 하나 날아와 기둥에 꽂힌다. 격문은 전쟁 중에 상대방을 교란할 목적으로 적장을 약 올리는 문체이다.
을지문덕은 적장에게 희롱하는 시를 써서 보내니, 수나라 군사들이 비로소 꼬임에 빠진 것을 알아차렸다. 을지문덕의 청야작전은 적중했다. 피로와 군량 부족으로 수나라 군대가 후퇴하자 을지문덕이 지휘하는 고구려군은 이를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수나라 군대가 살수(청천강)에 다다랐을 때에는 물이 얕았다. 을지문덕이 둑을 쌓아 물의 흐름을 막았기 때문이다. 수나라군은 이를 알지 못하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는데, 반쯤 건넜을 때 미리 막아둔 둑을 무너뜨려 공격을 하였다. 수나라 군사들은 물에 휩쓸리고 뒤이어 공격해 온 고구려 기병에 당해 거의 몰살했다. 이것이 이른 바 살수 대첩이다.
지금 북한은 을지문덕의 활약상과 고구려의 기개와 용기를 다시 배워서 남한을 비롯한 모든 적대국들에게 선군정치를 하려 한다. 핵무기 제조, 미사일 발사로 온 세계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전쟁준비에만 광분한다.
오직 남한만을 공격할 수 있는 황강댐의 물 공격은 더 이상 우리가 동족이 아니라 적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여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것은 지리를 이용한 작전이다. 그러나 지리는 인화만 못 하다고 했다.
우리 남한은 일치단결하여 인화를 이루어 내야 한다. 북한이 우리를 물로 공격해오면 우리는 북한에게 청야작전을 써라. 북한에 모든 원조는 차단하고 고립시켜야 한다. 살수대첩과 청야작전 이것이 을지문덕 한 사람의 작전이건만 남북한이 둘로 나누어지자 작전도 갈라졌다.
북한이 저지른 저 무모한 만행을 남한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남한이 잘못한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햇볕정책은 북한을 자극하면 안 된다고 했던가.
그 주창자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그런데도 일부 야당은 이것을 계승하겠다고 저 난리인가? 죄 없는 국민들을 얼마나 억울하게 사지로 몰아넣으려고 그러는가?
그들의 만행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몹쓸 햇빛정책으로 북한을 그렇게 퍼주었던가? 잘못된 정책만 이 땅에 남겨 혼란만 야기 시켜놓고 이제 그는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그렇다면 죽어서는 북한에 묻히지 왜 동작동 국립묘지에 묻혔는가? 그 호국영령들에게 부끄럽지도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