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많은 계들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지속성이 강한 것은 단연 상포계(喪布契)였다.
그것은 초상을 당한 사람을 돕기 위해 만든 것으로, 계원 중에서 누가 초상을 당하면 계금에서 상복을 만들 삼베를 사 주는 것이었다.
마을의 모든 어른들이 이 계에 가입되어 있었고,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관례적으로 아들이 계원이 되었다. 가끔 비축된 계금이 부족하면 계원이 분담하여 보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마을이 있는 한 상포계가 깨지는 법은 없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상포계도 없어졌다.
우리 마을에서 본 계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초롱계`였다. 초롱계는, 조명시설이 미비하던 시절, 잔치나 초상에 집집마다 초롱 하나씩을 부조하던 풍습이었다.
큰일을 당하면 밤중까지 사람이 드나들어야 하는데 한 집이 가진 초롱은 겨우 두어 개뿐이어서, 누구든지 큰일을 당하면 어둠을 이겨낼 수 없었다. 그럴 때 우리 어른들은 집집마다 석유를 채운 초롱에 불을 켜 들고 그 집으로 모였다.
온 마을에서 모인 초롱은, 그 집을 밝히고 온 마을의 길들을 밝혀 큰일이 탈없이 치러지도록 도왔다. 우리 어른들의 계는 그렇게 아름다웠다.
그런 고운 풍습이 이제는 장삿속의 대상이 되었다. 도시에서 고립되어 살면서, 초상을 당하면 도와줄 이웃도 목돈도 없는 이들을 겨냥해서 상조회사가 생겼다.
슬픈 얼굴을 하고 접근한 이들 장삿꾼들이 60만 명에 이르는 가입자들에게 허위 과장광고를 하다가 적발되었다. 마을을 밝히던 초롱계를 꿈꾸기에는 우리 사는 모습이 너무 야박해져 버린 것인가.
/可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