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퉁이는 험난하기 짝이 없는데 山角崎嶇
소 등에 올라타고 눈길을 가네 騎牛踏雪行
우암이 일찍이 어떤 사람에게 “나의 일생이 험난하리란 것은 채구가 이미 말하였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채구가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인정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과연 운명을 점치는 성명학의 대가다. 곡전자(穀顚子) 채구가 만약 김대중 선생을 보았다면
“망망대해에 성난 파도는 집채 만 한데
조각배 저어저어 어디로 가는가” 라고 했겠네.
고 김 전 대통령님은 초년 운은 평범하였고, 그의 중년 운은 성난 바다 한가운데 조각배 같이 위험하고 고통스러웠으며 그의 말년 운은 운수대통이었다고 할 수 있도다.
또 성대중의 같은 책 `초야와 조정` 이란 글에서
“이쪽이 얻으면 저쪽이 잃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조정(朝廷)이 어진 선비 한 명을 잃으면 강호(江湖)가 어진 선비 한 명을 얻고 초야가 어진 선비 한 명을 잃으면 조정이 어진 선비 한 명을 얻으니, 안과 밖이 서로 얻고 잃는 것 중에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사소한가? 그러나 출사(出仕)하여 이름을 온전히 한 자는 적고 은거하여 몸을 보전한 자는 많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치열하고 비속한 대한민국 정치판에 입문하여 이름을 온전히 한 자도 있으니 그가 바로 김대중 선생이다. 그는 전라남도 바다 한 작은 섬에서 태어나 소년기부터 대통령이 되겠다는 큰 꿈을 꾸었다. 헌앙(軒昻)한 의기에 준수한 풍모, 인동초 같은 취향에 탁월한 변론, 온갖 고통과 수모를 겪어 가면서도 그는 결국 대한민국의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사양기에 접어든 우리 경제를 국민들에게 금 모으기 운동을 전개하여 다시 일으켜 세웠고, 이 땅에 싹터오던 민주주의를 다시 발전시켰으며, 민족의 소원인 남북통일을 위하여 얼어붙은 땅 북한을 햇볕을 쪼이게 해서 통일을 이루려 하였고, 북한으로 달려가 그 지도자를 껴안기까지 했다.
이로서 꿈에 그리던 금강산을 다시 밟게 하였고 더 나아가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하였으니 그는 이름을 세계만방에 드날렸다. 그는 욕먹기가 쉽고 명성 얻기가 어렵다는 정치판에서 이름을 온전히 한 자가 분명하다.
이런 사람의 생명은 좀 연장해 줄만도 한데 그러나 이제 그를 이 세상 에서는 다시는 접할 수 없게 되었도다. 어찌하여 나로 하여금 목을 놓아 통곡하고 조물주를 원망하며 귀신을 탓하게 만드는가.
아, 슬프다. 선생은 백절불굴의 강개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면서도 자유분방한 풍모를 지녔다. 자기의 행동을 독실하게 단속하여, 집요하게 정치의 한 길을 외롭게 걸었다.
어쩌면 선생께서는 혼탁한 이 세상에 대해 염증을 내고 육신의 구속을 괴롭게 생각한 나머지 형체를 벗어 버리고 다른 세계로 몸 바꿔 올라가신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해와 달을 옆에 끼고 바람과 천둥을 몰고 다니는가 하면 까마득한 천상(天上)에서 느긋하게 노닐고 밑도 끝도 없는 세계를 드나들면서 선배 제현(諸賢)들과 어깨를 치며 즐겁게 노니느라 이 세상에 내려오려 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이승에서는 위대한 하나를 잃었지만 저 세상에서는 걸출한 하나를 얻었도다.
아 슬프도다. 삼가 고 김 전 대통령님의 서거를 슬퍼합니다. 저 세상에서는 모든 것 다 잊고 편히 잠드소서. 명(銘)을 지어 바치나이다.
망망대해에 성난 파도는 집채 만 한데
조각배 저어저어 어디로 가는가
영화 조스같은 사나운 상어 떼와
고기들을 통째로 집어 삼키는 무서운 고래 들이
펄펄 뛰어 오르는 그 험한 바다 위를
사람들은 모두들 무서워하는데
남도의 이름 모를 작은 섬 아이 하나
그 바다 위에 떴다.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핏빛 바다에 단지 노 하나로
상어도 잡고
고래도 잡았도다.
험한 바다는 노련한 뱃사공을 만드는 법
그 무서운 바다에 새로이 길이 나고
사람들은 즐겨 오가도다
그리고 그 햇볕은 쨍쨍 내리 쬔다.
아, 슬프다. 선생이 가셨도다.
대중 노인 대중 노인 편히 영면 하소 서.
험한 세상 당신과 함께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계속 흐르면서 오장(五臟)이 끊어져 나갈 것만 같은데, 대중노인은 우리가 슬퍼하는 것을 저 구천(九天) 위에서 바라보고는 다시금 손뼉 치며 한바탕 웃고 계실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