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관련법이 발의됐을 때부터 여야 사이의 첨예한 대립은 국회 내에서 충돌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소수가 다수를 막겠다며 기계톱과 해머가 동원된 물리력을 행사하며 가로막고 나섰고, 이를 뚫고 법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는 또 적법성의 논란이 제기됐다.
이런저런 사안을 종합해서 야당은 이제 대국민 상대로 미디어 법 국회통과의 부당함을 알리겠다며 거리로 나섰다.
이런 일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한 일인가? 미디어 관련법이 발효되면 재벌과 보수언론에 방송이 잠식돼 여론의 독과점 현상이 빚어질 것이고, 따라서 현 집권여당의 정권연장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이를 무조건 막고 봐야 한다는 게 야당의 논리이다.
백번 양보해서 야당의 이 논리가 모두 맞다 치자. 그러나 아무리 야당의 논리가 맞다 하더라도 소수가 다수를 막겠다며 폭력을 행사하고 다수가 선택한 사안을 전면 부정하고 나서는 건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의 기초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일이다. 그들은 선열들이 피 흘리고 우리 모두가 뜻 모아 합의한 대의제 민주정치를 통째로 부정하고 나선 것이다.
그들은 그 부정의 정당성을 민의에 따른 것이라 주장한다. 여론조사 결과 미디어 관련법은 국민의 다수가 반대하는 것이고 일부 재·보궐 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것으로 민의가 드러난 것인 만큼 반대할 만한 충분한 사유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충분히 반대를 할 만한 사안이다. 그러나 이 반대는 국회 내 투표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함께 민의를 얻어 당선된 다른 의원을 물리력으로 막고 반대한다는 건 독재체제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직 혁명전선에서나 있었을 법한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부당한 일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그러고는 자유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고 적반하장으로 나온 것이다. 자유 지상주의자였던 `존 스튜어트 밀`은 그의 자유론에서 “자유는 어떤 사람의 권리에 따라, 혹은 권리 안에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고 분명히 못 박고 있다.
반면에 방종은 권리를 넘어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거나 혹은 더 특별하게 다른 사람들의 권리들을 남용하는 것을 말한다. `밀`에 있어서의 자유와 방종 사이를 구분하는 대안적 수단으로 `해악의 원칙` 즉 자유가 과도해지는 그 지점, 자유가 방종이 되는 그 지점을 지시하고 있다.
자유론을 창시한 혜안을 가진 학자의 잣대로 봤을 때는 물론 삼척동자의 성근 잣대로도 일부 야당의 행태는 자유가 아닌 방종의 결과물이다. 이 같은 방종으로 그들은 자유민주주의의 최초 합의인 대의제를 전면 부정하고 나선 것이다.
그들의 섣부른 판단의 이면에는 국민을 판단능력이 모자라는 형편없는 존재로 보는 오만함이 깃들어져 있다. 국민은 여론 조작으로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호도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불구대천의 원수쯤으로 아는 이른바 조·중·동을 국민 스스로 판단해서 선택한 것이라는 걸 그들은 애써 부정하고 있다.
오로지 자신들의 판단만이 지고 지선이고 그 밖의 것은 악이라는 그들의 독선이 자유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있고, 다분히 독재적인 요소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국민은 현 정부 출범 초기부터 거대여당을 견제하기 위해 이른바 실세라는 거물 정치인 2명을 여봐란듯이 낙마 시켰다. 지금 정부가 하는 일이 국민들의 의사에 반하는 것이라면 다음 선거에서 다시 심판할 일이고 또 심판받을 것이다.
우리 국민은 충분히 그 같은 역량을 갖추고 있음을 지난 시기 민주화 과정에서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처럼 현명한 다수의 국민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시각으로 이 정치국면을 지켜보고 있는지 그들은 모른다.
오직 자신들의 논리만을 내세우고 국민을 바보로 인식하며 국가 장래를 함부로 예단하는 오만함이 정국을 이처럼 어지럽히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