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 가지 이야기는 모임의 분위기를 깨고 서로를 서먹하게 하며 서로 편을 가르는 역할을 하게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교양 있는 사람들은 모임에 가서 이런 유사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정치에 민감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치, 종교, 가족사 이야기를 하는데 거리낌이 없으며 정치성향이 다르면 서로 원수지간으로 변하기도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모이기만 하면 정치에 대한 이야기로 서로를 비판하는데 골몰하고 있다.
상대방을 배려하기는커녕 상대방의 기분을 짓이겨 놓아야 적성이 풀리는 사람들도 많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품석정기(品石亭記)`란 글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내가 귀양에서 고향 초천(苕川:소내리)의 농막으로 돌아온 뒤에는 날마다 형제·친척과 마을 뒷산인 유산(酉山)의 정자에 모여 술을 마시고 오이를 먹으면서 담소를 하는 것으로 낙을 삼았다.
술이 얼큰하게 취하자, 어떤 사람이 술병을 두드리고 술상을 치면서 일어나 말했다. “누구는 너무 이기적이어서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권세와 영화를 잡는 데 미혹되어 있으니 가슴 아픈 일이며, 누구는 담담하게 인적을 멀리하고 자취를 감춰 현달하지 못하니 애석한 일이다” 라고 했다.
나는 벌주 한 잔을 부어 꿇어앉아 권했다. “옛날에 반고(班固)는 지나간 사람들을 품평(品評)하고는 마침내 두헌(竇憲)의 잘못에 연루되었고, 월단평의 고사로 유명한 허소는 당시의 사람을 품평하여 마침내 조조(曹操)의 위협을 받았으니, 사람이란 함부로 품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삼가 벌주를 드립니다.”
얼마 뒤에 어떤 사람이 시끄럽게 떠들며 일어나 말했다. “저 말은 장사할 쌀을 실어 나르지 못하면서 꼴과 콩만 먹어 치우며, 저 개는 담장에 구멍을 뚫고 넘어오는 도둑을 막지도 못하면서 뼈다귀나 바라고 있다”고 했다.
나는 또 벌주 한 잔을 부어 꿇어앉아 권하기를, “옛날에 황희 정승은 두 소의 우열을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았으니, 짐승도 품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삼가 벌주를 드립니다” 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기뻐하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자네의 정자에서 노닐기는 참으로 어렵구려! 우리는 입을 다물고 혀를 묶어 두어야 하겠소” 하였다. 나는 말하였다.
“그게 무슨 말이오. 종일 시끄럽게 떠들어도 금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여러분들을 위해 먼저 시험해 보이겠소. 부암(鳧巖)의 바위는 우뚝 삼엄하게 서 있어서 북쪽으로 고랑(皐狼)의 성난 파도를 막아주고, 남쪽으로 필탄(筆灘)의 명사(明沙)를 펼쳤으니, 이것은 돌이 이 정자에 공(功)이 있는 것이며, 남주(藍州)의 바위는 울퉁불퉁 늘어져서 꼬불꼬불한 이수(二水)의 분수계(分水界)를 만들고 오강(五江)의 돛단배를 받아들이니, 이것은 돌이 이 정자에 정(情)이 붙게 하는 것이며, 석호의 바위는 울긋불긋 천태만상인데 새벽에는 엷은 안개가 감싸고 저녁에는 진한 노을이 둘러 있어서 난간과 서까래에 비치면 상쾌한 기운이 절로 일어나니, 이것은 돌이 이 정자에 운치가 있게 하는 것이오. 대체로 사물 가운데서 무지(無知)한 것은 돌입니다. 종일 품평하여도 화낼 줄을 모릅니다. 누가 그대에게 입을 다물고 혀를 묶으라고 말하겠소.” 어떤 사람이 나무라기를, “옛날에 유후(留侯)는 돌을 보배로 여겨 제사를 지냈고, 원장(元章)은 돌을 공경하여 절을 하였는데, 그대가 돌을 품평하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하였다. 나는 “옳습니다. 당신의 말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돌을 칭찬한 것입니다. 내가 언제 돌을 모욕을 주며 불손하게 대하였소”하였다.
이 정자가 예전에는 이름이 없었는데, 이로부터는 `바위의 품격을 말한다는 뜻에서 품석정(品石亭)`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손과 더불어 주고받은 이야기를 기록하여 기(記)로 삼는다.
제발 아름다운 정자에서 정치를 말하지 말라. 김대중이 어떻고 김영삼이 어떻고 하기보다는 어느 산 바위가 아름답고 어느 산 바위가 신기하다는 이야기가 훨씬 낫다는 말이다.
천박한 정치이야기 천 마디보다는 우아한 자연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 한마디가 훨씬 더 우리의 영혼을 아름답게 한다. 신문의 기사 중에 길거리를 꽉 메운 광화문의 광우병 촛불시위 사진과 팝 음악을 듣기 위해 영국의 길거리를 꽉 메운 청중들의 사진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그런가 하면 작가의 사인회에 인산인해를 이루는 일본의 길거리를 보면서 느낀 점이 있었다.
후진국은 정치이야기로 아름다운 공원을 메우고 선진국은 예술 이야기로 공원을 메운다. 광화문 광장과 서울 시청 앞 광장에는 품격 높은 이야기만 있게 하고 정치이야기는 없게 하라.
대한민국의 모든 광장에서 자연의 아름다움만 말하게 하라. 정치의 이야기감옥에 갇혀서 시달리는 국민들이여, 대한민국의 산과 강과 바다로 탈출하라. 그리고 아름다움 찾기에 골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