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볕이 쏟아져야 할 즈음에는 저온현상이 뻗쳐 서늘한 여름을 건너고 있다. 어저께가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추(立秋)였고, 열흘쯤 지나면 처서(處暑)다.
자연의 순환이 많이 변하고 정상적인 흐름에서 벗어난 느낌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기상의 이상 현상이라고 한다.
어쨌든 여름을 견딘 숲의 낌새가 수상하다.
아직은 초록 가시의 밤송이에도, 산벚나무의 진초록 잎새에도, 배꼽을 쏘옥 내민 도토리 둥지에도 여름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지만 가을 정령(精靈)의 입김이 스며 조금씩 가을의 빛깔로 바뀌고 있다.
어디 숲뿐인가. 모진 불볕 아래 힘들고 고단한 시간들을 최선을 다해 살아온 이웃들이 한가위를 맞으며 환하게 밝은 보름달이 되기도 하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되기도 하여 훈훈한 정과 아름다운 마음과 손을 나누어주는 정감 어린 사랑의 계절이 오고 있다.
가을은 이렇듯 충만한 사랑과 결실의 계절이다. 가을 맞으며 우리는 새로운 희망과 비전을 가졌으면 좋겠다.
오랫동안 끌어오고 있는 북핵 문제가 빠른 해결을 길을 찾았으면 좋겠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으로 국제 사회뿐만 아니라, 남북화해협력의 길에 다소 긍정적인 희망의 빛이 비치고 있다.
아직은 그 실현의 여러 문제가 산적해 있긴 하지만 새로운 희망의 길을 열어갔으면 하는 바램 간절히 가져본다.
올가을에는 언제부턴가 금이 가고 깨져 버려 이제는 그 골이 더욱 깊어지고 틈이 벌어져 서로 갈등하고 반목하는 관계들이 아름답게 회복되었으면 좋겠다.
열심히 일하며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당하게 대우받는 정의가 이룩된다면 이러한 어려운 문제들은 서서히 해결되어갈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최근 미디어법 강행처리에 따른 국회마비현상은 길어지고 있으며 화급한 민생문제는 당리당략에 얽매인 정쟁으로 표류되고 있는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제는 진정 민생을 먼저 생각하는 성숙한 정치가 이뤄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을 가져본다.
올가을에는 이 나라를 앞서서 끌어간다고 믿고 있는 지도자들이 진정으로 멸사봉공(滅私奉公), 보국위민(保國爲民)의 정신으로 국민들이 무엇을 바라는지에 귀 기울이고, 어떻게 목마름을 해갈시켜줄 것인가에 온 뜻과 정성을 모았으면 좋겠다.
올가을에는 우리 모두 눈을 들어 먼 곳을 바라볼 줄 아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당장 눈앞에 놓인 조그만 이권에 온통 자신을 던져 넣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바쁜 생활 속에서도 한 번쯤은 맑고 투명한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자. 무한히 깊디깊은 푸른 하늘, 새털구름 양떼구름이 고운 무늬로 펼쳐지기도 하는 가을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면 넓은 어머니의 가슴 같은 안온함과 그윽한 평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편벽하게 자기중심의 이기적인 삶의 태도에서 벗어나 더불어 살아가는 자연과 사람들, 그 속에 푸르고 뜨겁게 일렁이며 흐르는 생명을 느껴보자.
올가을에는 폭염을 견딘 숲, 조금씩 고운 빛깔로 채색되어 가는 숲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 풍성한 결실과 넉넉한 평화로 넘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