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한 지역을 대표하고 그 지역의 살림살이를 이끌어 나가는, 눈에 띄는 지도자로의 역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중간 허리인 이들이 어떤 철학과 인생관으로 세상을 살아나가느냐는 지역민 모두의 본보기가 된다.
이런 점에서 특히 기초자치단체장은 단순한 행정의 수장으로서의 능력 이전에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 일정한 리더의 자격을 갖춰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많은 부분에서 이와는 거리가 먼 이상한 모양새를 보이는 자치단체장들이 예상외로 많다.
경상북도의 어떤 군수님이 보여준 사례들은 차라리 희극의 한 장면으로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이분은 한문 실력이 전혀 없어 일상적으로 쓰이는 행정용어조차 읽을 능력이 없다.
컴퓨터가 일상화되기 전 차트 글씨로 업무보고를 하던 10여 년 전, 당시 한문이 섞인 보고서나 업무계획 등은 국문으로 토를 달아 군수님께 올렸다.
그러나 눈치 없는 어떤 간부는 한문이 섞인 통상적인 문서를 그대로 군수에게 올렸다가 혼쭐이 났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느냐?”라며 서류를 내던지고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단순히 한문 글자 모른다고 해서 군수가 될 자격이 없는 건 아니다.
중국 선종의 6대 종조인 혜능 선사는 중국인으로 한문을 전혀 몰랐으나 깨달음 하나로 초기 중국 선종을 이끌었고 그의 법어 등을 모은 육조단경은 지금도 불가의 귀감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국에서 자기 나라 글을 몰라도 이만큼 훌륭한 업적을 쌓는데, 한국에서 중국 글 모른다고 군수 노릇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지적 수준이 이 정도이다 보니 자기 성찰이나 남을 위한 배려 등, 군수가 아닌 장삼이사도 누구나 갖춰야 할 덕목도 하나 가진 게 없다.
다만 재산불리는 재주는 남달랐고 이 재산으로 선거구민 꼬드기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이런 군수가 지방을 다스려도 행정조직은 자체의 속성만으로도 굴러 가는 흉내를 낸다.
이런 유형의 군수가 자신의 왕국을 구축하고 “내 눈앞에 사람 누가 있느냐”는 식의 안하무인의 작태를 보이는 것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어떤 유형의 인간이던 한 보따리의 돈만 들이밀면 공천을 주는 얼빠진 정당과 몇 푼의 돈에 꾀인 못난 지역민들의 합작품이다.
겉으로 봐선 어엿하게 갖출 건 다 갖추었다. 서울의 번듯한 대학을 나와서 사회생활도 할 만큼 했고 사업가로 그런대로 성공을 했으니 외형상 그럴 듯하다.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서울의 대학이라는 곳도 지금의 수도권 대학 말이지 당시만 해도 학생 모집책이 돈 가방 들고 지방을 돌아다니며 학생을 모집하던 시절이다. 운 좋게 돈 많은 아버지 만나 대학에 들어갔고, 대학 들어가서도 학교에 나가든 말든 공부야 하든 말든 등록금만 내면 졸업장 주던 시절이다.
이 정도로 대학을 다녔으니 남들은 상식에 속하는 한문 한자 못 읽는 문맹으로 사회에 나온 것이다.
이런 인사를 지역에 기반을 둔 정당이 공천을 줬고, 이 정당이 공천만 하면 말뚝을 내세워도 당선이 된다는 이른바 지역 정서가 야합한 것이다.
이제 다시 내년이면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기초 지방자치단체 선거의 정당공천은 잘못된 것이라고 학계와 언론은 물론 대다수의 국민들이 외쳐도 정치권은 아예 귀를 막고 있다.
내년 선거도 분명히 정당이 공천한 인사들을 내세워 선거할 게 분명하다. 이런 막무가내식의 정치권 행보는 국민을 얕잡아 보기 때문이다.
멍청한 국민들은 또 중앙 정치권의 숨은 의도야 어디에 있건, 학연과 지연 혈연을 찾아 죽기 아니면 살기식의 패거리 향연을 벌일 것이다. 이 잔치에는 늙은이, 젊은이· 배운 자· 못 배운 자· 가진 자· 없는 자 가릴 것 없이 너도나도 참여 한다.
이들은 다시 중우정치의 진수를 드러내 보일 것이다. 이런 국민을, 내 잇속 챙기기에만 이골이 난 정치권이 얕잡아 보지 않을 턱이 있겠는가.
돈키호테가 자치단체장이 되는 것이나, 아수라장인 현재 정치권의 모습이나 모두 할 수 없는 우리들이 연출한 한바탕 희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