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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앵커의 전설 크롱카이트

슈퍼관리자
등록일 2009-07-23 14:51 게재일 2009-07-2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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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CBS 이브닝뉴스의 앵커로 20여 년을 활동했던 월터 크롱카이트가 지난 17일 92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6·70년대 미국 언론계 지존의 자리를 지키며 10년 이상 미국을 이끌어 가는 주요인물로 선정됐을 만큼 미국인들의 추앙을 받았던 터라, 온 나라가 그의 영면을 애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70년대 후반, 방송기자였던 필자는 연수교육을 받으면서 녹화된 CBS의 이브닝 뉴스를 보고, 뉴스리포트는 어떻게 해야 하며 앵커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보고 배웠다.

사상과 경제·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앞서가는 서구사회를 따라가며 배우던 시절이라 그들의 뉴스제작과 진행방식도 당연히 교범이 되는 것으로 알았던 시절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미국의 메이저 방송들은 특정 뉴스 시간대를 앵커맨과 계약해서 그가 제작한 뉴스가 방송이 된다.

예컨대 CBS가 크롱카이트와 10년간 1억 달러에 계약하면 이 기간에 방송국이 아닌 그에게 소속된 기자들이 뉴스를 제작하고 크롱카이트가 진행을 하는 방식이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 주요방송사의 앵커는 뉴스 프로덕션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처럼 특정뉴스 시간대를 자기 혼자 소화하는 그였지만 진행에는 철저하게 객관성을 유지했다. 원론적으로는 뉴스에서 객관성이란 존재할 수가 없다고 한다.

특정 사인이나 사건을 취재하는 순간부터 언론사나 취재기자의 주관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언론사나 취재기자는 고도의 윤리성과 함께 전문성과 판단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크롱카이트가 CBS에 재직했던 1962년부터 1981년 사이에는 미국 현대사에 굵직한 획을 그을만한 중대한 사건들이 줄을 이었다.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사건에서부터 베트남 전쟁, 그리고 닉슨을 하야시킨 워터게이트 사건과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등 지금 들어도 세계인 모두가 기억할만한 사건들이 줄을 이었다.

이처럼 굵직한 사건들을 보도하면서 그는 언제나 냉정함을 잃지 않았고 특정 정파나 사견에 따른 판단을 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전달했다.

이 때문에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미국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고, 심지어 월남전의 종식도 그의 영향이 컸다고들 한다.

크롱카이트의 언론관은, 언론인으로서 윤리는 언제 어느 때나 모두에게 공정할 수 있도록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는 것이었다. 이 같은 언론관을 실천하며 일 해왔던 그였던 만큼 베트남전 현장을 둘러보고 “미국이 베트남에서 수렁에 빠졌다”고 한 뒤 베트남전의 미국 여론을 바꿨고, 결국 전쟁의 종식으로 이어진 것이다.

무릇 제대로 된 언론인은 이처럼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이를 철저히 실천할 때라야 가능한 것이고, 최소한 이를 따르려는 노력은 기울여야 유사언론인은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외견상 방송에서 뉴스 앵커맨이 있고 기자가 리포트를 하는 등 외국의 그것을 흉내 내고 있다.

이브닝 뉴스 식의 진행방식은 70년대 중반 국내에서 처음 시도됐고 리포트 뉴스 말미에 “무슨 방송 아무개입니다.” 하는 네임사인은 주미 특파원을 지낸 김기주 전 MBC보도국장이 국내에 처음 도입하면서 자리를 잡아 지금까지 이어지는 등 외형은 외국과 유사하게 갖추고 있다.

그러나 방송과 신문 등 언론매체의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모 방송사의 앵커맨(실제는 뉴스 캐스터)은 뉴스를 진행하고 말미에 특정 정파의 시각이 다분한 시건방진 멘트를 계속하다 구설에 올랐다든지, 정국 현안을 두고 파업을 일삼는 언론사 노조들이 판을 치는 나라가 됐다. 정치현안을 두고 파업에 나서는 노조가 장악한 방송은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

최근 미디어관련법 국회통과를 두고 벌이는 언론노조의 연대 파업은 기득권을 가진 그들만의 밥그릇 챙기기 외에 다른 설득력은 아무 데도 찾을 수 없다.

방송을 재벌이나 보수 신문에 줄 경우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현 정권을 연장 시킬 것이라는 그들의 논리가 언론사 파업이유는 될 수 없다.

그들의 파업 자체가 뉴스 전달자로서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떠나 있어, 자기모순에 빠진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나 또는 우리의 판단이 맞다고 해도 이를 객관화시킬 줄 아는 것이 제대로 된 언론인이 할 일이다. 이 시대의 언론인 크롱카이트를 보내며 참담한 우리의 언론 현실을 곡(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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