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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 어둠의 봉인을 해제하라

슈퍼관리자
등록일 2009-07-21 09:30 게재일 2009-07-2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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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의 만남이 끝난 후 귀가 버스에 오른 그녀.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 하차한다. 그녀의 뒤를 이어 하차하는 청년.

`또각또각`, `저벅저벅` 어두운 밤길 두 남녀의 발자국 소리만이 골목길에 울린다.

`또각또각, 또각또각`. `저벅저벅, 저벅저벅` 빨라지는 여대생의 발자국 소리에 맞춰 청년의 발자국 소리도 덩달아 빨라진다. 자신의 발자국 속도에 맞춰 빨라지는 청년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그녀의 심장도 덩달아 빠르게 팔딱거린다.

`또각또각, 또각또각` 걸음을 더욱 빨리하는 그녀, 그녀보다 더 빨라지는 청년의 발자국 소리 `윽, 도대체 뭐야? 뛰어야 하나?` 순간 그녀를 한참 앞질러 전력 질주하는 청년~

대학생들에게 성을 주제로 한 교육을 할 기회가 내게는 가끔 있다. 어느 대학교에서의 강의가 끝난 후 한 남학생이 위와 같은 상황을 이야기하며 억울해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그냥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을 뿐인데 그 여성의 걸음이 점점 빨라지니까 나를 무슨 파렴치한 성폭력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처럼 불쾌했었어요.”

자신이 성폭력 가해자로 오해받았다는 것에 대한 억울함이었으리라. 역으로 그녀의 입장에서는 성폭력에 대한 공포로 심장이 차오르지 않았을까? 그녀의 공포는 어둔 밤, 모르는 사람에게 우발적으로 성폭력을 당할 것에 대한 공포였으리라.

물론 성폭력 사건이 밤에, 모르는 사람에게, 그것도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여성들에게는 밤길을 혼자서 이동하는 것에 대한 공포가 존재한다.

더구나 밤 시간에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여자가 그렇게 밤늦게 다니니 그렇지~”하며 피해의 책임을 피해자들에게 전가하는 왜곡된 가치가 일상에 팽배해 있기에 복잡한 공포감이 엄습하는 것이다.

올해 초 있었던 경기 서남부 지역 연쇄 성폭력 살인 사건부터 최근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故 장자연씨 사건까지 여성의 몸과 성, 일상의 권리를 침해하는 성폭력 사건들이 여성들의 밤거리와 일상을 전보다 더 강력하게 통제, 제한하고 있다.

특별히 여성의 몸과 성에 대한 폭력과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여성을 성폭력에 취약하게 만드는 성폭력에 대한 통념의 부당함이나 성차별적 문화에 대한 문제제기보다는 여성에 대한 통제를 오히려 더욱 강화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일련의 성폭력, 성적 피해에 대한 보도를 반복적으로 접하면서 전보다 더 큰 공포와 무기력을 느끼게 된다. 또한 여성들이 마음 놓고 다니고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은 전보다 더욱 줄어버린 듯하다. 여성과 아동 및 약자들을 대상으로 한 잔혹하거나 충격적인 사건들을 접할 때 그들의 일상을 문제 삼기보다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 원인에 대한 성찰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편견으로 여성의 일상이 얼마나 통제되어 왔는지, 여성들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운신의 권리와 몸의 권리가 회복되어야 함을 되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여성들에게 안전한 밤길을 되찾을 수 있도록 어둔 골목길 불빛과 마음의 눈빛을 환히 밝혀야 할 것이다. 더 이상 등 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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