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기차는 간다...허수경

관리자 기자
등록일 2009-06-22 19:24 게재일 2009-06-22
스크랩버튼
기차는 지나가고 밤꽃은 지고

밤꽃은 지고 꽃자리도 지네

오 오 나보다 더 그리운 것도 가지만

나는 남네 기차는 가네

내 몸 속에 들어온 너의 몸을 추억하거니

그리운 것들은 그리운 것들끼리 몸이 먼저 닮아 있었구나

- 허수경 시집 ‘혼자 가는 먼 집’(문학과지성사·1992)


허수경 둘째 시집 ‘혼자 가는 먼집’은 사랑의 단절로 생겨난 마음의 폐허에서 격정적으로 솟아나는 울음과 탄식의 노래들로 가득 차 있다. 표제 시 ‘혼자 가는 먼 집’에서 “무를 수도 없는 참혹”의 그리운 당신을 “킥킥 당신”이라 명명한 역설적 표현을 비롯하여 “더는 취하지 않아/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길이/날 묶어”(‘不醉不歸’), “내 상처의 실개천엔/세월도 물에 빠져나오지 않고”(‘상처의 실개천엔 저녁해가 빠지고’), “버려진 마음들이 켜놓은 세상의 등불은 아프고 대책없습니다”(‘정든 병‘), “넌 왜 날 버렸니? 내가 언제 널?/살아가는 게, 살아내는 게 상처였지”(‘서늘한 점심상’) 등의 표현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그의 노래는 사랑의 단절로 상처나고 병든 몸에서 터져 나오는 절망의 슬픈 노래들이다. 기형도의 한 시를 연상케 하는, “사카린같이 스며들던 상처야”로 시작하는 시 ‘봄날은 간다’와 시집 앞뒤로 편재된 ‘기차는 간다’도 이별의 아픔을 노래하고 있다. 시적 화자 앞에 남자의 성적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밤꽃과 기차는 지고 지나가고 없다. 6행의 이 짧은 시에 ‘지다’와 ‘가다’라는 동사가 범벅이 되어 있다. 대조와 단정적인 시구인 “나는 남네 기차는 가네”에서 보듯 이는 당신이 떠나가는 데 대한 시적 화자의 통곡과 탄식의 절규다. 시집 ‘혼자 가는 먼 집’이 나온 지 벌써 17년이나 지났다. 지금 허수경 시인은 만리 타국 독일로 유학 가 고고학을 연구하면서 새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시인이여, 이제는 그 그리움과 서러움으로 인한 마음의 집착(執着)을 그만 다 내려놓으시라. 그리고 편안하고 행복하시라.

해설<이종암·시인>

종합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