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팻날이 무디면 깎아놓은 나무도 터실터실하고, 대팻날이 시퍼러면 깎은 나무도 반들반들하다고 했다. 서각작품이 꼭 그렇단다. 예술가의 작품이 삶의 연모이고 바로 사람됨이어서, 그의 창작품에 따라 사람은 훌륭할 수도, 하찮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각가 박훈포(48·사진)씨. 그런데 그는 여기다 한 수를 더 보탰다. “작품도 갈고 닦아야 빛이 나고 아끼고 부려 써야 힘이 생깁니다.” 대충대충 만드는 작품보다 정성을 쏟은 작품에 대한 바람일 테다. 그는 그랬다.20여년을 우리 전통예술에 대해, 우리 전통예술의 힘에 대해 애정을 품었다. 그가 보내온 A4 2장에 빼곡히 나열된 이력이 그것을 증명했다.
20여년동안 포항에서 서각가, 장승조각가로 활동했고 제1회 영일만 장승제를 주관했다.
한국서각협회 이사, 한국서각협회 경북지회장, 한국 불교서각협회 경북지부장, 한국 서각협회 초대작가·운영위원, 진주 개천예술제 초대작가·운영위원, 성산 미술대전 초대작가·운영위원·심사, 인터넷 서예대전 초대작가, 포항시 서예대전 초대작가·운영위원, 한국 장승 진흥회 포항지부장을 맡고 있다.
하지만 감투가 그의 진정한 이력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감투는 우리 전통예술을 살리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는 올해로 20년째 서각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글 서예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서각을 접하게 되어 서각에 대한 미묘한 매력에 빠져 서각칼을 잡게 됐다.
“서예의 평면적인 글씨 보다는 입체적이고 생동감 있는 글씨를 새기는 것이 또다른 매력이 있었습니다. 서각에 대한 전시회를 포항, 경주에서 개최하면서 한국서각협회전을 통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서각은 동남아시아 한자 문화권에 있는 나라들끼리 국제 연맹이 있다.
한국서각협회전은 주로 서울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에서 전시를 많이 하며 한국, 일본, 중국, 말레이시아, 싱가폴에서 4년마다 국제순회전을 하고 있다. 국제전시회는 일본 동경전 4회, 중국전 4회, 시승격 50주년 기념 일본 자매도시인 후쿠야마 교류전을 포항시와 포항미술협회에서 2회 전시를 했으며 지금은 한국서각협회전 전국 17개 지회 지부전을 개최하고 매년 순회전을 하고 있다.
“서각가로서 전업작가로 생활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지만 때로는 외롭고 힘듭니다. 이제는 너무 많이 걸어와 버렸네요. 이것이 제 삶의 전부 입니다. 모든 것이 경제적으로 힘들겠지만 묵묵히 걸어갈 겁니다. 한 우물을 오랫동안 파다보니 이제는 경제적인 어려움도 문제없이 잘 해결해 나갑니다.”
그는 전통문화재 사찰에 현판·주련 작업을 많이 한다. ’예술작품을 남기는 마음으로 하다보니’보람이 크다.
대가들의 서예글씨가 서각작품으로 함께 남기 때문이다.
그는 장승작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장승은 서각을 하면서 같이 시작했지요. 지리산 칠선계곡 쪽에 실상사, 벽송사가 있습니다. 오래된 고찰이지요. 실상사쪽은 석장승이 5기 정도가 남아있습니다. 아주 귀중한 장승자료지요. 돌은 돌대로 세월의 풍파속에 이끼가 묻어 아주 고태미가 있는 작품처럼 보입니다. 정말 매력적이고 어떻게 돌로서 저런 모양을 만들 수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지만 묵묵히 서있는 장승을 보면 세월의 무장함을 느끼곤 합니다.”
벽송사 쪽은 밤나무로 깍은 목장승인데 지방문화재로 등록돼 누각 안에 잘 보관하고 있다.
절과 민간인 땅과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세운 장승인데 아주 특이한 형태로 조각해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세월의 풍파가 그대로 묻어 있는 나무의 결이 잘 살아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지리산 등산을 하면서 이 장승에 매료돼 장승작업을 하게 됐지요. 특히 포항은 다른 지방에 비해 장승·솟대의 분포가 아주 작은 지역 입니다. 아무래도 삶의 터전이 바다이고 바다쪽에 대한 별신굿 형태가 많이 남은 것 같습니다. 포항은 오천 장승백이, 장성동, 신광, 기계 천곡사 들어가는 입구에 1970년대 후반까지는 남아 있었습니다. 2000년 해맞이 행사를 하면서 여러번 장승문화행사를 개최하고 장승문화에 대해 많이 알리기도 했습니다. 신광 방풍림에서는 흥해 청년회와 가족 장승깍기 행사도 하고 대보해맞이공원에서는 일일관광체험 장승깍기 행사도 포항시·포항MBC와 함께 여러 번 했었습니다.”
대보해맞이 공원 한켠에 조그마한 장승공원이라도 만들기 위해 여러번 시도 했지만 ‘인식부족’으로 쉽지가 않았다.
포항지역 곳곳에서 장승관련 행사를 개최했지만 어느 한 개인이 이루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경기도 어려워지고 소규모 행사도 치루기가 어렵네요. 지인의 도움으로 몇년 동안 시민들이 장승에 대해 알고 체험할 수 있는 행사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만 경기침체 때문에 도움 청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
하지만 그는 장승에 대한 신념만은 버리지 못한다.
“장승은 우리 조상님들의 생활문화라는 사실만으로도 그 보존가치가 충분히 있거든요. 장승은 어떤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삶의 문화속에 한 부분입니다.”
그나마 포항문화원에서 정월대보름행사의 일환으로 솟대세우기, 장승세우기 행사를 이어나가고 있어 ‘일련의 희망’을 놓지 않아도 된다.
“경상북도 기능올림픽위원회에서 5년째 장승깎기 대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매년 구미 기계공업고등학교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아직 관심 부족이지만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그는 이 대회 첫번째 금상 수상자이다.
“앞으로 장승깎는 기능도 명장제도가 열렸습니다. 장승도 조각작품으로 전통·현대·해학이 묻어있는 작품으로 잘 조각 한다면 볼거리가 되고 예술작품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지요. 그래도 사라져가는 장승문화를 살리고 알리는데 최선을 다 할 겁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또 해야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전국 팔도 장승이 한자리에 모여 예술적 가치를 발휘한다면 그것도 볼거리가 되겠지요. 묵묵히 세월속에 어렵지만 버티어 보려 합니다.”
경남 고성이 고향인 그에게 있어 포항에서 장승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느 예술가 못지 않게 힘이 든 것은 사실이다.
“고향이 아닌 곳에서 악착같이 살아온 지난날이 아까워서라도 또다시 이를 악물게 됩니다. 서각가, 장승조각가로서 최고 예술가로서 인정받을때 까지 말입니다.”
그는 앞으로 사찰에서 반야심경 전시회를 계획하고 있다.
절과 관련된 불경이나 목판본·탁본 작업을 하고 있다. 반야심경 작품이 준비되면 내년 하반기께 전국 순회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그는 많은 작업을 하지만 서각에 대한 마음은 남다르다.
“서각은 좋은 작품을 새기고 남기는 작업 입니다. 서예 대가들의 글씨를 올바로 서각 작품으로 남길 때 가장 보람되지요. 앞으로 바쁜 일들이 끝나면 문하생들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서각에 대한 예술을 알릴 계획입니다.”
그는 현재 한국서각협회 경북도지회장을 맡고 있다. 포항, 구미, 상주 지부가 있다. 서각 동호인들이 등록된 인원만 70여명 정도 된다.
“물론 개인적으로 활동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많은 전시회를 통해 홍보할 계획입니다. 최근 서각전시회는 지역에서 초대전이나 운영·심사 위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경상남도 미술협회, 경상북도 미술협회 교류전이나 포항미술협회 정기전 등 여러곳에서 전시교류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 문화예술정책에 있어서는 꾸준한 관심과 많은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문화예술정책이라는 것이 항시 많은 변화가 있으니까요.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많은 전시공간과 활동들이 활발합니다. 포항도 포항시립미술관이 완성되면 조금은 나아지겠지요. 많은 활동과 꾸준한 작품활동이 살아있는 예술을 더욱더 빛나게 하지 않겠습니까.”
그의 작품은 국제교류전을 하면서 외국에 기증한 것이 여럿 된다.
일본 후쿠야마 문화관, 싱가폴 문화관, 미국 피츠버그 한국공원에 그의 장승조각이 소장돼 있다.
“주로 전국 각지에 장승을 조각해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서각 작품은 주로 전통문화재 사찰에 많이 남아있습니다. 불국사, 보경사, 부여 고란사, 오어사, 천곡사, 문경 혜국사, 오어사 자장암 등 전국 각지에 현판·주련 작업을 해오다 보니 전통문화재 사찰에 많이 남아있습니다.”
근래에는 포항문화예술회관 현판을 기증했다. 서예가 솔뫼 정현식씨가 쓴 글을 서각했다.
“문화예술회관을 짓고 현판을 달지 않아 안타까워 기증했습니다. 포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화예술인들의 자존심이기도 해서요.”
이렇게 전통문화예술을 지키고 후손에게 남겨주고자 하는 그의 예술혼은 ‘최선을 다하면서 살자’라는 그의 좌우명에서 나오는 듯 했다.
“작품활동이라는 게 끝이 있습니까?”
그는 이제까지 쭉 해온 일들이 주로 서각일들인만큼 앞으로도 서각에 더욱 매진할 계획이다.
“서각에는 중앙문화재 각자장이 있고 해인사 팔만대장경 목판을 서각하는 일을 각자서각이라고 합니다. 지방문화재인 서각장에 있습니다. 서각장은 전통문화재 사찰인 현판·주련이 있지요. ”
그는 서각장을 준비하고 있다.
지방문화재 서각장은 20년 이상 경력이 돼야 신청 가능하고 전통문화재 사찰 일을 해야 한다.
“지금 어느정도 포트폴리오 작업은 마무리 단계 입니다. 서각인으로서는 최고의 훈장 아니겠습니까. 쉬운일은 아니겠지만 열심히 노력해야죠.”
앞으로의 꿈이 무엇이세요?
“글쎄요. 한적한 시골 조그마한 야산에 한 3천평 정도 장승공원과 작품 갤러리 하나 짓고 예술작품에 몰두하고 싶네요.”
그는 꿈은 이루어지기 위해 꾸는 것 아니겠냐고 다부지게 말한다.
“주변 좋은 지인들과 차나 한잔 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싶네요. 포항예술문화의 양산박을 만들고 싶네요. ”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