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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성심성월에 충격 · 슬픔 평화로 채워지길 기도하며

정석수 기자
등록일 2009-06-04 20:03 게재일 2009-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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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수 초전성당 주임신부

먼저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면목이 없습니다.” “저를 버려주십시오.”라는 표현에 저러다 그것이 현실이 될 줄이야! 남겨진 이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국민의 열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조문행렬에 섰고, 그 행렬의 끝은 어딜까 한다.

잠 못 이루는 밤 시편의 이런 기도를 바치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저의 세월 연기 속에 스러져 가고 저의 뼈들은 불덩이처럼 달아올랐습니다.

음식을 먹는 것도 저는 잊어 제 마음 풀처럼 베어져 메말라 가고 탄식 소리로 제 뼈가 살가죽에 붙었습니다. 저는 광야의 까마귀와 같아지고 폐허의 부엉이처럼 되었습니다. 저는 잠 못 이루어 지붕 위의 외로운 새처럼 되었습니다…. 저의 세월 기울어 가는 그림자 같고 저는 풀처럼 메말라 갑니다.”

범인이야 그 고뇌의 깊이를 알겠는가마는 연기 속에 사라진 세월, 잠 못 이루는 외로운 새, 풀처럼 메마름은 절박함을 준다.

충격과 상처가 앞으로 어떻게 씻어 질런지…. 기도하게 된다. 주님은 죽음의 충격을 겪은 제자들 공동체 한 가운데 자리 잡으시고 평화를 전하였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평화는 두려움으로 닫힌 문을 열게 하는 힘이요 위로였다.

죽음의 충격으로 상처받은 곳을 평화로 채워주시어 죽음의 상처 두 손과 옆구리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죽음의 상처까지 더 이상 회피하지 않고 직면함으로써 제자들은 기뻐하였다.

그리고 다시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한 번 더 제자 공동체에 평화를 전하시어 그들의 상처를 온전히 치유하시고서, 치유 받은 이들을 상처받은 이들에게 보낸 것은 아닐까?

상처받은 이들에게 다가서되, 두려움이 아닌 하느님의 영,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여 파견하신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예수님은 죽음 전에 제자들에게 약속하였던 성령(보호자)을 건네신다.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보호자를 통하여 더 이상 죽음의 상처에 매몰되지 않게 되었고 혼자도 아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예수님은 죽음을 통하여 두려움을 남긴 것이 아니라 평화를 남겼다.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른 평화를 전달하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할까?

존경과 배려가 아닐까 한다. “나는 당신을 풀어줄 권한도 있고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다.”는 빌라도에게 예수님은 그 권한을 인정하였다.

“네가 위로부터 받지 않았다면 나에게 대해 아무런 권한도 없었을 것이다.” 빌라가 가진 위로부터의 권한을 존중해 준 것은 아닐까 한다.

이러한 존중의 모습과 사뭇 다른 모습을 접하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자신이 존경했던 분만 대통령이고 국민의 권한으로 뽑힌 현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니란 말인가.

바오로는 로마공동체에 그리스도인과 권위에 대해 설명한다. “하느님에게서 나오지 않는 권위란 있을 수 없고, 현재의 권위들도 하느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지배자는 그대의 이익을 위하여 일하는 하느님의 일꾼입니다.”

권한을 행사하는 이들은 상대의 이익을 위하여 일함으로써 권위의 원천에 연결 된다. 상대의 이익을 위하여 행사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주어진 권한 안에서 행사를 한다고 했지만 슬픔을 토로할 최소의 장소마저 막는 것이 최선일까 생각해 본다.

주님, 사랑의 마음으로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어 존중과 배려가 꽃피게 하소서.

그리하여 닫힌 문이 열리고 통합의 사회, 함께 하는 세상이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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