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에 러일전쟁 때 종군기자로 우리나라에 왔던 미국의 소설가 잭 런던은 당시의 대한제국에 대하여 이런 글을 남겼다.
“군수는 악명 높은 양반이다. 이를테면 도둑놈이다. 양반들은 모두가 도둑이고, 백성들은 양반하면 의례히 자기 것을 빼앗아가는 도둑으로만 생각했다. 그들은 지배계급인 양반들이 모두가 도둑놈이라는 사실 외에는 아는 바가 없었다.”
이 얼마나 참담한 내용인가? 외국인의 눈에 비친 지도층인 양반들이 이 모양이었으니 대한제국이 망조가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흔히들 조선의 마지막을 외세의 침략 탓이라는 점에 초점을 두고 또 그렇게 교육을 해왔다.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외세의 침략에 의해 결정되는 것보다 내부의 부패로 인한 것이 더 많다.
과거 로마제국이 그랬고, 중국의 진왕조가 그랬다. 근현대사를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구소련연방을 비롯하여 끝이 보이지 않는 수렁에서 지금도 허덕이고 있는 남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수많은 나라들이 외세 때문이 아니라 내부가 곪아 썩어 들면서 일어난 자업자득이라는 사실이다.
관리들은 부패하여 민심을 잃었고, 노도처럼 밀려오는 외세를 막을 힘은 그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 조선의 마지막 모습이었음을 역사를 배운 사람은 다 안다.
조선왕조의 끝인 대한제국의 부패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하다. 고종과 순종이 마지막황제였다는 사실만을 부각시키며 망국의 비운에 초점을 맞춘 탓에 비운의 제왕으로만 알고 동정하는 경향이 짙기 때문이다.
앞에서 든 잭 런던 씨와 같이 우리나라를 다녀갔던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당시의 나라꼴에서도 보듯이, 망국의 통한을 삼킬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나라를 이끌고 책임져야할 지도자들의 부패가 더 큰 이유였다고 한다면 과연 억지라고만 볼 수 있을까?
당시 대한제국의 실상은 바람 앞의 촛불이었다. 권력을 쥔 자들과 백성들은 결속이 되지 못하여 국가의 뿌리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최고대신에서부터 최 말단관리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민심은 완전히 떠났다. 심지어 고종황제는 매관매직에 직접 개입하여 뇌물이 신통찮으면 신하들 앞에서 노골적으로 뇌물봉투를 집어던지는 추태까지 부렸다고 한다.
국고는 바닥이 나서 나라를 지탱하기조차 어려운 지경에 빠졌는데도 황제를 비롯한 핵심권력자들의 주머니는 터질듯 했고, 방백들은 백성들의 고혈을 짜대며 시퍼렇게 설쳐대니 이를 견디지 못한 백성들은 살길을 찾아 만주로 피난 아닌 피난을 떠나는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사정이 이랬으니 나라에 망조가 들지 않았다고 했다면 그것은 아마 기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대한제국은 무너졌고 외세의 침탈과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필설로는 다 할 수 없는 질곡의 민족적 치욕을 당한 것이다.
오늘날 정치인들이 가장 즐겨 쓰는 말이 ‘애민’이다. 그래서 입만 벙긋했다하면 “국민들이 심판할 것이다.” “국민의 이름으로….” 국민을 내세우면 모든 것이 다 통할 듯 갖다 붙인다. 언제부터 그렇게 국민들을 생각했고 언제부터 그렇게 애민사상이 투철했는지 말끝마다 국민을 들먹인다.
최근에 불거져 나오는 고위정치인들의 부정부패를 보면서 그들 역시 권좌에 있을 때는 애민이라는 말을 수없이 들먹였다. 자기만큼 나라를 위하고 국민을 사랑한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는 듯.
세종대왕, 충무공이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마르고 닳도록 써 먹던 구절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 자리에 있으면서 혹세무민하고 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더 이상의 혹세무민은 사라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정한 애민사상으로 무장하는 정치인들의 거듭남이 있어야 한다. 홍역을 치룬 5월은 이제 기억 저편 역사로 떠나보내고 새로운 화합의 역사를 다시 써 나가야 한다.
언제까지나 과거의 족쇄에 발목을 매달릴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역사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반면거울의 심정으로 역사를 비춰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