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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뿌리의식

정태원 기자
등록일 2009-06-04 20:04 게재일 2009-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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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원 북부취재본부장

얼마 전 신라의 김알지가 흉노족의 후예라는 사실이 중국의 사료와 한국에 있는 사료들로 미루어, 거의 확실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부 네티즌들은 이를 두고 상당한 곡해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들은 최근의 정세를 비판적으로 보면서 한나라당을 ‘흉노족 당’이라 불렀다.

이 말의 뜻은 한나라당이 경상도에 뿌리를 두고 있고, 경상도는 신라의 고토(故土)인 만큼 신라를 지배했던 김알지를 시조로 하는 경주김씨 주축의 경상도는 흉노족의 후예들이라고 욕을 한 것이다.

역사인식이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일이다. 우선 흉노족이 나쁜 민족이라는 시각은 침략의 시달림을 받았던 중국 쪽의 인식이고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사대주의도 예사 사대주의가 아니다.

흉노족은 중국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에 맞서 싸우면서 만리장성을 쌓게 했고 초기의 한나라를 혼쭐내줄 정도로 강력한 유목제국을 형성했다.

흉노의 정벌에 나선 한 무제는 흉노의 왼팔을 잘라버린다며 고조선을 정복했다. 그는 고조선이 다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요하 하류 유역과 한반도 서북쪽에 한사군을 설치한다.

결국 흉노와 고조선은 별개가 아니라는 말이며 무제의 시각에서는 같은 종족으로 보였던 것이다.

한 무제 이후 흉노족은 유럽지역 또는 몽골, 한반도 등지로 흩어진다. 이 때문에 흉노족의 후예를 자처하는 터키 국민들은 우리를 형제국으로 알고 있기도 하다.

신라의 김씨가 흉노의 후예였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진 것은 정조 20년 경주에서 밭을 갈던 농부가 발견한 분무대왕 비석이었다.

이 비문을 읽은 김정희와 유득공 등은 문무왕의 직계조상이었던 성한왕 김알지가 흉노족으로, 중국 한나라 때 김일제의 후손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중국 한서에는 김일제가 흉노 휴도왕(休屠王)의 태자로 한 무제의 포로가 되었다가 흉노 전투에서 공을 세우고, 서한에 귀화한 인물로 기록하고 있다.

이 김일제의 7대손이 김알지라는 것이다. 한나라에서 명문세가로 지내던 김일제 후손들은 4대손인 김당 때 전한은 무너뜨리고 신(薪)나라를 세운 왕망과 혈연으로 엮인다.

그러나 15년 만에 신나라가 망하고 후한이 들어서면서 위험해진 김씨 일파들이 한반도 남부로 건너와서 가락국을 세웠다는 것이고 이들이 신라 김씨의 뿌리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최근 신라 김씨가 김일제의 후손임을 구체적으로 적은 재당 신라인의 묘지명이 발견되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중국 산시성 시안(西安)시 곽가탄(郭家灘)의 ‘대당고김씨부인묘명(大唐故金氏夫人墓銘)’에는 신라 김씨들이 한나라 제후였던 김일제의 후손이라고 적고 있다.

이 같은 사실들이 확인돼도, 당시 신라의 지배세력으로 부상한 김씨들이 자신들의 우월성을 내보이기 위해 뿌리를 중국에 있다고 과장했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경주의 적석총 무덤양식에서부터 금관과 각배, 말안장 등 중앙아시아 기마민족이 쓰던 물건들이 대량 출토되는 점 등 고고학적 자료들로 미루어, 흉노의 한반도 정착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이 설이 사실이어도 한반도에 살면서 김씨를 욕해도 될 만한 성을 가진 이는 아무도 없다.

경주김씨를 비롯해서 전라도에 뿌리를 뒀다는 광산김씨는 신무왕의 셋째아들 김흥광을 시조로 두고 있고 무열왕의 6세인 김주원은 강릉 김씨의 시조이다.

이 밖에도 수원김씨, 부안·순천·연안·나주·영동·안산김씨에다가 안동권씨·광산이씨 등 김씨가 아닌 성씨까지 포함하면 현존하는 본관만 50여 개가 신라 김씨에 연원을 두고 있다.

수로왕 계열과 합치면 대한민국 국민의 4분의 1이 신라계 김씨이다. 이들의 직계 후손이 아니라 해도 2천 년 가까운 역사가 흘러오는 동안 이들 성씨와 혼인을 하지 않은 성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만약 직접 혼인을 하지 않았다 해도 외손에 외손을 거듭해서 거친다면 경상도뿐만 아니라 한국민 모두가 흉노의 피를 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다시 말해 흉노를 욕한 자는, 자기 조상과 자신을 욕한 셈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정치현실에 화가 나도 내 조상 욕까지 해가며 상대를 헐뜯을 일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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