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호국보훈(護國報勳)의 달이다.
호국의 한자어로는 바깥 둘레에서 ‘헤아리다’는 뜻을 가진 부수를 제외한 글자와 언(言)으로 이루어져 둘레에서 말로 ‘지키다.’의 호(護)와 백성들과 땅을 지키기 위해 국경(口)을 에워싸고 적이 침입하지 못하게 했다는 데서 ‘나라’를 뜻하는 국(國)의 합성어이다.
보훈은 죄를 짓고(幸) 다스림을 받은 사람이라는 데서 ‘갚다’를 뜻한 보(報)와 훈은 뜻을 나타내는 힘력부(部)와 음을 나타내는 동시 임금을 나타내는 훈(熏)으로 이루어진 합성어이다.
오늘날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지난날 목숨을 바쳐 국가를 지켜준 유공자들에게 죄인이라는 생각으로 그 호국영령의 높은 뜻을 받들어 복지국가로 길이 발전시키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1945년 일본의 압제에서 해방되면서 우리 민족의 의사와는 무관한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분할점령으로 그어진 38도 선은 지리적 분할로만 그치지 않았다.
군사적 편의에 따라 설정된 잠정적인 이 분할선은 그 후 정치적 경계선으로 굳어지면서 1930∼40년대 한국 민족운동에 있어서 좌·우익으로 분립되었던 양상은 이 선의 양편에서 각자 유일한 정통 합법정부를 표방하면서 다른 정치권력을 만들어서 한민족을 이념적으로까지 갈라놓았다.
당시 모스크바 3국 외상회담에서 결정된 한국에 대한 5년간의 신탁통치안은 한국민의 강력한 반발을 유발시켰고 찬탁· 반탁 등으로 국민여론을 분열시켰다.
북쪽은 소련의 사주로 찬탁으로 돌아섰지만 남쪽은 좌우로 나누어져 주로 우익계열(민족주의계열)에서 반탁시위를, 좌익계열(사회주의계열)에서는 찬탁시위를 했다. 이렇게 서로를 헐뜯으며 반목하던 혼란한 사회는 그 대립이 격화되어 제주도 4·3사건과 여수, 순천 10·19사건이라는 불행을 낳고 말았다.
36년이란 오랜 세월을 일제의 강점기에서 2차 세계대전의 산물로 해방된 후 북한은 소련의 지원으로 전쟁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남한은 성숙되지 못한 국민 의식구조 속에서 도입된 미국식 민주주의를 뿌리 내리지 못하고 지도층의 부정부패와 이익집단들의 폭력이라는 혼란을 거듭하다가 급기야 1950년 6월 25일 이 느슨해진 틈을 노린 북쪽의 적화통일 방안에 의해 발발한 동족상쟁의 한국전쟁은 같은 동포들이 서로 피를 흘리며 싸운 민족적 비극일 뿐만 아니라 남북한 양측에게 상상도 못 할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가져다주었다. 당시 이 나라를 지켜준 호국영령들은 현재가 아닌 미래를 기준으로 살아왔기에 자신의 목숨을 산화시키는 희생을 감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전쟁의 폐허로 남한의 경제에 그나마 해방이후 존재하였던 일제 강점시기의 산업시설마저 전소시켰으며 이는 50년대의 한국경제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동족간의 전쟁은 결국 국토를 초토화시키고 사회를 질식시켜 저항보다는 실존과 개인이 중요했던 사회, 빈곤과 실업이 지배했던 사회, 무기력과 체념이 일상화된 사회로 만들어 버렸다.
민족의 유지나 국가의 형성은 과거 없는 오늘이 있을 수 없으며 오늘 없는 내일은 기약 될 수 없다는 역사 순환성의 진리를 더듬어 볼 때 역사는 시대 현실과의 상호 관계를 지니고 있다.
‘제레미 리프킨’은 그의 저서 ‘엔트로피’에서 오늘날의 사회를 ‘역사상 사회 체제의 변환은 자원의 고갈이나 풍요 때문에 일어났다. 현재의 고도의 물질문명이 봉착한 갖가지 부정적 측면으로부터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상당히 절실해 보인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시간은 과거로 돌이킬 수가 없고 오직 미래를 향해 흐를 뿐이다. 과거의 잘잘못이 오늘의 교훈이 되어 바람직한 국가관으로 그 정체성이 확립될 때 국가는 밝은 미래를 약속할 것이다. 6월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나라의 존립과 유지를 위해 공헌하거나 희생한 국가유공자에 대해 죄인의 심정으로 예우하고 추모하여 애국정신을 함양하는 기간이다.
60여 년 전 발생한 민족상쟁의 쓰라린 추억을 안고 6월의 태양 아래 노출된 호국영령들의 무덤들과 아직도 발굴되지 못한 채 외롭게 떠도는 호국영혼들은 침묵 속에서 온갖 이론과 명분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이익을 합리화하려는 집단이기주자들이 다투는 오늘의 우리 사회를 걱정스레 묵묵히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