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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필드'

관리자 기자
등록일 2009-05-29 19:57 게재일 2009-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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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잔혹함 …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놓인 그들

영화 ‘킬링필드’는 캄보디아 내란을 취재하던 ‘타임즈’지의 특파원 기자 시드니 쉴버그(Sydney Schanberg)와 공산화된 캄보디아에 홀로 남겨진 친구 디스 프란(Dith Pran)과의 인종과 국경을 뛰어넘는 우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영국 감독 롤랑 조페의 역작이다.


1973년 8월 7일, 캄보디아.


캄보디아 주재 미국의 뉴욕 타임스지 특파원인 시드니 쉔버그는 1972년 캄보디아에서 미국 공군의 오폭으로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1973년 8월 현지 취재차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 도착한다. 이때는 캄보디아가 크메르 루즈군의 수중에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시드니는 뉴욕 타임스지 현지 채용 기자인 캄보디아인 디스 프란과 함께 어렵사리 참혹한 현장을 카메라에 담는다.


상황은 시시각각 캄보디아 정부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이에 위기를 느낀 시드니와 프란 일행은 미국 대사관의 도움을 얻어 먼저 가족을 피신시키고 자신들은 남아서 마지막까지 취재를 한다.


그러던 도중 크메르 루즈군에게 붙잡혀 죽음의 위기에 몰리지만 프란의 간곡한 설득으로 시드니와 다른 서구 기자들은 무사히 풀려난다.


결국 수도 프놈펜이 크메르 루즈군에게 함락되고 궁지에 몰린 시드니와 프란 일행은 프랑스 대사관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나 프랑스 대사관 측은 프란이 캄보디아인이라는 이유로 도움을 거절한다.


대사관 밖으로 쫓겨난 프란은 크메르 루즈군에게 붙잡혀 강제 수용소에서 처절한 생활을 한다.


본국으로 무사히 돌아간 시드니는 먼저 도착한 프란의 가족을 보살피는 한편 프란의 소재 파악 및 구출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허사다.


그 동안 수용소에서 온갖 고초를 겪던 프란은 크메르 루즈군 장교 파트의 도움으로 마침내 그곳을 탈출하여 타이의 난민촌에 도착한다. 1979년 10월 9일 마침내 프란과 시드니는 극적으로 재회하게 된다.


킬링필드(Killing Field)란 ‘죽음의 들’이란 뜻의 캄보디아 쿠메르루즈 정권 때의 악명 높은 대학살로 생긴 집단 무덤을 가리킨다.


곡괭이와 대나무 창, 그리고 비닐 봉지를 머리에 씌워 질식시켜 살해하는 방법 등으로 3년간 800만의 인구 중 약 200만 명이 목숨을 잃은 참혹한 대학살 바로 그것이다.


이 영화는 1980년 1월 20일자 뉴욕타임스에 실려 퓰리쳐상을 수상한 쉔버그 기자의 글 ‘디스프란의 생과 사 - 한 캄보디아인의 이야기’를 각색한 작품으로, 그는 제도나 사상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이 얼마나 야만적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제도의 야수성을 고발하고 폭로해 전 세계의 자유인들에게 쉽사리 잊혀지지 않을 충격을 안겨주었다.


무참히 보복되는 살육의 현장, 색출과 도피, 굶주림과 질병의 공포 속에 지옥 같은 붉은 노역을 탈출, 끈질긴 생존 욕구와 국경을 뛰어넘는 우정이 펼쳐지며, 특히 존 레논의 ‘Imagine’이 흐르는 라스트는 쉽게 잊지 못할 감동의 긴 여운을 준다. 84년 아카데미 촬영, 편집, 남우조연상 등 3개 부문 수상했다.


그 해 여름 국내 개봉되었을 때 영화 홍보차 방한했던 그는 국내 기자들과의 회견에서 이런 말을 남긴다.


“연기 수업을 전혀 받은 적이 없지만 공산 치하 4년의 쓰라린 체험이 연기 이상의 실습이 된 것 같다. 아카데미상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우리 가족과 참상을 당한 400만 동포에게 주어진 진혼의 트로피이자 공산주의와 싸우는 모든 자유민들의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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