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은 모든 선수의 공적이 되는 동시에 엄청난 심적 부담감에 휩싸인다.”
2004년 아테네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국기 태권도 대표 선수들을 지휘한 김세혁 삼성에스원 태권도 감독은 27일 전북 김제실내체육관에서 막을 내린 2009 태권도 국가대표 선발 최종대회를 이렇게 평가했다.
오는 10월 덴마크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할 대표 1진을 뽑는 이번 대회에서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4명 중 차동민(한국가스공사)과 손태진(삼성에스원), 황경선(고양시청)이 잇따라 탈락했다. 임수정(수원시청)만이 1위를 차지해 올림픽 챔피언의 체면을 세웠다.
올림픽 못지 않게 어려운 국내 선발전에서 기존 대표급 스타들이 탈락하는 사례는 종종 있었지만 올림픽 이듬해에 금메달의 주인공들이 한꺼번에 무너진 경우는 없었다.
차동민은 최종 결승에서 같은 팀 라이벌 남윤배(한국가스공사)에게 두 번 연달아졌고 손태진과 황경선도 승자조, 패자조에서 각각 한 번씩 2패를 당해 우승권에서 멀어졌다.
남자부 핀급(54㎏급)에서 불패 행진을 이어가며 세계선수권대회 4회 우승에 도전하게 된 최연호(한국가스공사)를 빼면 사실상 ‘무림에 절대 고수가 사라졌다’는 말이 실감나는 상황이다.
올림픽 스타들을 딛고 새내기들이 도약하는 한편 한물간 것으로 평가되던 베테랑들이 재기에 성공하면서 거의 모든 체급에 춘추전국 시대가 도래했다.
대한태권도협회 관계자는 “국내 선발전에서 상위 입상을 다투는 선수들의 전력이 백지 한 장 차이라는 점이 여실히 입증됐다”면서 “선수층에 큰 변화가 없었지만 전력 격차가 좁혀졌다고 본다”라고 평가했다.
김세혁 감독은 “개정된 룰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예전에는 몸통 공격이 무조건 1점이었지만 이제는 돌려차기 등 회전 기술이 동반되면 2점을 준다. 타이틀을 지켜야 하는 쪽에서 부담을 갖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모든 체급 선수들이 올림픽 우승자를 과녁으로 삼아 연구한다. 금메달리스트들은 지면 안 된다는 심적 부담을 떠안는다”면서 이런 복합적인 요인이 올림픽 챔피언을 무덤으로 내모는 이변을 낳았다고 분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