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적 죽음문화를 청산할 수 있는 길이 트였다. 대법원이 21일 판결을 통해 최초로 존엄사를 허용함으로써다. 물론 이는 선언적 의미의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존엄사 관련법 제정과 구체적 시행방안 마련과 같은 후속대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볼 때 대법원 판결로 획기적 이정표가 설정돼 오랜 존엄사 논란을 일단락짓고 새로운 출발선에 서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사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존엄사에 관한 한 법과 제도를 전혀 갖추지 못한 가운데 엉거주춤한 상태에 머물러왔다. 거기다 죽음에 대한 일반의 인식도 낙후성을 면치 못했다. 말기환자가 삶의 마지막 과정인 죽음의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가족과 의료인, 사회가 함께 막아온 셈이다. 생존 가능성이 전혀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의료인들은 최종 순간까지 무의미한 치료에 매달려야 했고, 가족 역시 가망 없는 환자의 연명치료를 중단해달라고 드러내놓고 차마 말하기 힘들었다. 국가도 이런 현실에 눈 감은 채 지지부진한 논란만 지켜봐야 했다.
존엄사의 정당성이 인정된 만큼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후속조치들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존엄사법의 입법화가 이뤄지고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들도 마련돼야 한다. 존엄사의 결정주체와 적용범위, 판정기준, 실행절차 등 또한 세심하게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남용 방지책 마련은 말할 나위도 없다. 사회적 준비 못지 않게 당사자의 인식 제고와 사전 준비 역시 중요하다. 죽음문화의 성숙을 위해서는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성찰하는 문화의 확산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언문’과 같은 자기결정을 명확히 해둠으로써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말기상황의 혼란을 막아야 한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삶과 죽음을 원점에서 총체적으로 다시 생각하고 그 실천방안을 모색하는 사회적 합의의 출발점이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