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4년 3월에 제1기 문화강좌를 개강한 경주박물관대학은 일 년에 두 기수씩 강좌와 답사를 실시해 올해로 제31기까지 진행되고 있다. 지난 10일 박물관대학 총동문회(회장 이광오)가 주관한 태안·서산지역 답사가 실시되었다. 우리나라 마애불의 시조격인 태안마애삼존불,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마애삼존불, 대원군의 아버지로 더 알려진 남연군의 묘 등 개인적으로는 거리와 시간의 문제로 답사가 쉽지 않은 곳들이었다. 오늘부터 2∼3회에 걸쳐 이번에 답사를 실시한 충남 서산·태안지역의 문화유산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충남 태안군은 동해안 지역에서 당일치기로 갔다 오기는 확실히 먼 거리였다. 첫 답사지 까지 가는데 만 5시간이 걸린단다.
새벽부터 국립 경주박물관 주차장에 모인 120여명의 박물관대학 동문들이 4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길을 나섰다. 오랜만에 떠나는 장거리 여행이라 설레일만도 한데, 쉽지 않은 일정에 주눅(?)이 들어 버스에 몸을 싣고는 바로 잠을 청한다. 잠깐씩 눈을 붙이고, 창밖 풍경도 구경하고, 같은 차에 탑승한 회원끼리 소개와 인사도 하면서 첫 답사지인 충남 태안군 태안읍의태안마애삼존불(泰安磨崖三尊佛)로 향했다.
태안마애삼존불은 태안읍 백화산에 위치하고 있는 국보 제307호인 마애삼존불이다. 우리나라 마애불상의 초기 형태로 부채꼴 바위면에 사각형 감실을 마련하여 중앙에 보살상을 두고 좌우에 불상을 조각하였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삼존불은 1구의 본존불과 양쪽에 보살상을 두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인데, 태안마애삼존불은 중앙에 1구의 보살상을 두고 양쪽에 불상을 조각하는 특이한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특이한 형식에 대해서는 문화재 지정 당시부터 학자들 간에 이견이 분분하다. 여러 학자들이 연구를 통한 다양한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도 모두의 동의를 얻지 못한 추론일 뿐이다. 다만 2002년에 중앙승가대 총장 종범 스님이 ‘관음보살이 무진의보살로부터 받은 보주를 둘로 나누어 하나는 오른쪽의 다보여래에게, 다른 하나는 왼쪽의 석가여래에게 올렸다’는 ‘법화경’의 내용을 표현한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아 불교계에서는 이 불상을 ‘태안마애관세음보살 이불봉주(二佛奉珠) 삼존상’이라고 부르고 있다 한다.
양쪽의 불상은 양감이 풍부한 얼굴에 미소가 크게 번지고 있고, 넓게 벌어진 당당한 어깨와 장대한 체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U자형 주름과 Y형의 내의가 보이는 옷의 형태와 도톰한 듯 날카로운 대좌의 연꽃무늬 등 세부적으로는 거의 동일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 중앙의 보살상은 두 불상 사이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하고, 보기에 따라서는 약간 뒤에서 따라오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보관을 쓰고 있는데 아무런 무늬도 보이지 않지만, 원래는 장식이 조각돼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타원형으로 길고 통통한 얼굴은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고, 신체는 원통형으로 직립해 있다. 어깨를 덮어 내린 천의는 길게 내려와 무릎 부분에서 ×자형으로 교차하며 묵중하게 처리되었으며 배 앞에 모은 두 손은 오른손을 위로 하여 보주를 감싸 쥐고 있는 봉보주인(捧寶珠印)을 하고 있다.
보호각 제작 당시에 기초공사를 하면서 삼존불의 아랫부분이 노출되어 백제시대의 연화대좌가 확인돼 도상적 가치가 더욱 커졌으며, 국보로 지정 되었다. 태안반도가 중국과의 교류상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어 6세기 중반께 중국 북제양식 불상과의 영향 관계 파악에 매우 중요한 작품이며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마애삼존불상(국보 제84호)보다 앞선 조형양식을 지닌 백제 최고(最古)의 마애불상이다.
모든 문화재가 그렇듯이 태안마애삼존불도 관리와 보존의 문제로 끊임없이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보호각이 오히려 불상의 풍화를 가중시키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현재는 철거 결정이 내려진 상태이다. 또한 보호각 공사당시에 인근 군부대로 이어지는 도로의 확장공사가 있었는데, 이 도로가 불상과 너무 가까워 차량통행시 발생하는 진동이 불상에 영향을 끼친다는 지적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유구한 역사에 걸맞게 참으로 귀한 문화유산들이 전해지고 있다. 물론 남아있는 것 보다는 없어진 것이 더 많겠지만,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는 문화유산을 후손에게 물려주어 대대로 조상의 위대함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언제나 그 시대 사람의 몫일 것이다. 주위에 흔하게 보여 무심코 지나치는 유적에도 모두 조상의 얼이 담겨 있다. 모두가 조금만 더 신경을 쓰고 아낀다면, 몇 세대가 흐르더라도 우리 후손들도 지금의 우리가 느끼는 감동을 똑같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삼존불의 좌측에서 바라 본 모습. 얼굴의 윤곽은 세월의 흔적으로 지금은 자세히 확인하기가 어렵다. 사진 우측 상단의 홈은 불상 제작 당시에 감실을 만들기 위한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