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창기 시인 첫 시집 ‘달팽이 성자’ 출간
큰 형님 같은 후덕한 인품의 손창기(43) 시인이 첫 시집 ‘달팽이 聖者(북인)’를 펴냈다. 200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이후 6년 만의 시집이다.
“시집 제목(달팽이 성자)이 좋지 않으냐”고 시인은 되레 물어왔는데, ‘달팽이 성자’는 그러니까 시인의 솔직담백한 심사를 담은 말이다. 세상도 늙고, 자신도 흐르는 세월이지만 부신 햇살처럼 거리낌없이, 이동력이 약한 달팽이들처럼 지역 문단을 지키며 성자처럼 둥그런 삶을 살겠다는 마음 같다. 다음의 시가 그렇다.
“…. 모래밭을 삼켜버린 겨울 바다가 긴 도마에/ 천연덕스럽게 가부좌를 틀고/ 길게 뻗친 수평선도 여기서는 둥글어진다…./ 송도바닷가엔 아직도 꾸부정한/ 소나무가 쓸려나가는 모래를 붙잡고 살고있다”(‘송도해수욕장’중)
정일근 시인은 손 시인을 “상처를 은유로 읽는 남달리 따뜻한 눈을 가졌다”고 시평에 쓰고 있다.
세상의 상처에 대한 긍정적인 손 시인의 시안(詩眼)이 그를 서정시인으로 만들고 있으며 슬픔과 좌절 사이에 시를 무논의 모처럼 심고 있다.
“통곡이 터질 듯한 순간을 이 악물고 순한 황소처럼 시를 써온 시인의 첫 시집은 그 길 걸어가며 찍은 ‘화문(花紋)’이려니! 그 뜨거운 무늬 따라 걷고 또 걷다보면 스스로 꽃 피고 스스로 열매 맺는 ‘새들을 불러 모으는 ’느티나무이려니!”라는 정일근 시인의 말처럼 손 시인의 시선은 신산했던 가족의 삶을 비롯해 흔히 변두리로 통용되는 고달프고 주목받지 못한 생(生)에 대한 주목과 그런 삶을 보듬는 따스한 연민의 서정으로 넘쳐나고 있다.
“겨울 자취방을 어머니 다녀가시면/ 온기의 웅웅거림이 방바닥에서 생겨났다/…. 어머니 생신날, 아궁이에 불 지피며/ 구들목 장판 속으로 돈을 넣는다/ 넉넉히 드리고 싶지만 가난한 마음/ 그랬었구나, 어머니는/ 일생, 주머니 속에 장판 지갑을 가지고 계셨다”(‘장판지갑’중)
“국화빵 가게는 겨울에도 꽃이 핀다/ 비닐엔 폐타이어 몇 개 동여 놓고/ 이슬방울이 송이송이 맺혀 있다/…. 조금 전 마이너스통장 금액 인상으로/ 아내와 난 마음 하나 맞추지 못하고/ 실랑이질 벌이다가 문득/ 사내가 디디고 간 자리마다 꽃무늬 보도블록/ 마구 구워지는 걸 보며 한겨울/ 땅 속에도 분명 뜨신 연탄불이 있을 거라고/ 함께 고개 끄덕였다”(‘화문(花紋)들’)
군불을 때며 어머니가 평생 가졌던 ‘장판지갑’을 찾아내고 갈등과 위기가 지나치게 쉽게 일어나는 우리 시대를 국화빵 가게의 부부를 통해 반성적으로 인식하는 ‘화문(花紋)들’, 그의 시엔 기개도 숨어 있다. ‘잘도 굴러가는 둥근 낮달’(‘봄날’) ‘굶주림도 글로벌이다’(‘진흙쿠키’) ‘중심을 향해 달려가고 싶었던 것일 게다’(‘허물 속으로’)….
군위 출신인 손 시인은 영남대 국문과와 경북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푸른시’ 동인과 포항문인협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포항 대동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