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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가(山家)의 봄 조동화

관리자 기자
등록일 2009-05-13 21:16 게재일 2009-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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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이


밤중에야


돌아오는


산 밑 외딴집



누렁이


조는 겨를


살구나무


가지로 올라



사월은


저 홀로 겨운가


웃음보를


터뜨린다



- 낮은 물소리(동학사·2003)





신라 천년의 고도(古都) 경주에 살면서 서라벌의 문화유적과 자연 풍광 그리고 그곳 삶의 이야기를 맑은 수묵화처럼 펼쳐 보이는 조동화 시인. 나는 그의 시조집 ‘낮은 물소리’에서 단형시조 ‘山家의 봄’을 읽다가 다음 페이지를 쉽사리 넘길 수 없었다. 3장 6구의 이 짧은 단형 시조가 머금고 있는 깊은 서정과 다채로운 빛에 갇혀 노는 즐거움을 내려놓을 수 없어서였다. 봄날 산가(山家)의 한 순간을 포착하여 그려놓은 조동화의 이 노래는 한 폭의 맑은 수채화 같다. 그것은 그림이기는 하되 정지된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그림이다. 초장에서 중장, 종장으로 이어지면서 펼쳐지는 원경(遠景)에서 근경(近景)으로의 시선 이동과 정적(靜的)인 이미지에서 동적(動的)인 이미지로의 시상 전개가 시의 활력(活力)을 솟구치게 한다. ‘山家의 봄’이라는 그림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사월’이라는 시간이 행위의 주체로 서 있다. 저 ‘사월’이 “누렁이 조는 겨를 살구나무 가지로 올라”가는 모습은 얼마나 구체적이고 해학적인가. 그리고 종장의 “사월은 저 홀로 겨운가 웃음보를 터뜨린다”는 것은 또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살구나무 가지에 하얀 살구꽃이 활짝 피는 순간을 사월이 “웃음보를 터뜨린다”라고 시치미를 뚝 떼고 있는 저 능청스러움의 솜씨가 가히 일품(一品)이다. 살구나무 가지가 하얀 이빨을 다 드러내고 터뜨리는 웃음보로 사월 산가(山家)의 적막감과 애상적 정서를 더하고 있다.


해설<이종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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