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수 <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경북분원 주임교수 >
어느 부모치고 제 자식 잘되기를 바라지 않는 이는 없겠지만 나는 내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하는 아이로 자라났으면 하고 바라지는 않는다. 요즈음 세상은 어찌된 영문인지 못된 일을 크게 저지르는 사람들은 거의가 많이 배운 자들이다.
교육에 학문은 없어지고 지식만 남아 인간들에게 간교만을 일깨워 주는 역기능 현상이 이처럼 두드러질 수 있을까 싶다.
공부를 많이 할수록 인간적인 향기는 점차 잃어버리고, 냉혈과 책모만이 그 인간의 행위를 지배하는 것을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자주 본다.
간교한 지식으로 교묘히 법망을 피해가며 더러운 부와 명성을 탐하는 자, 배신과 묘략을 가리지 않고 남을 짓밟는 자들의 그 찬란한 경력을 한번 살펴보라.
사회의 피라밋을 볼 때 그들이 교육을 받는 교육기관은 최상위에 자리 잡은 것이다. 그 아래로 식량을 생산하는 농민이 있고, 생필품을 만들어 내는 노동자들이 있고, 연료를 캐내는 광부들이 있다. 이네들의 피와 땀으로 고등교육기관은 유지되고 운영되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의 존재 이유는 너무나 분명하다. 건전한 인재를 육성, 배출하여 이사회를 보다 밝은 내일로 이끌어가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교육 혜택을 받은 자들이 사회에 ‘약’을 제공하지 못하고 ‘병’만을 돌려주는 허다한 병폐를 볼 때 나는 오늘날 우리의 교육이 앓고 있는 병의 중증을 본 듯한 느낌이다.
전인교육은 구호에 그치고, 인간성 상실과 약삭빠른 처세술, 각박한 마음만이 충만 하고 있음을 본다. 이는 사회의 불행이요, 개인의 비극이다.
옛날 우리네 조상님들은 학문의 깊음을 곧 인품의 높음으로 생각했고, 또 실제가 그랬다. 그리하여 깊은 학문을 지녔음에도 인간의 고결하고도 순박한 성품을 고스란히 간직했던 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생각할수록 고개가 숙여지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어찌 그처럼 쉽사리 순박함을 팽개치고 마는 것일까? 참으로 학문이 깊고도 순박한 인품을 갖고 있는 이, 어떻게 보면 그래서 어리숙하게 까지 보이는 그런 풋풋한 인간적인 향기를 머금고 있는 이가 그립다.
오로지 점수 따기와 일류만을 밝히는 공부는 인간 자체를 망치기 쉬우며, 오늘의 현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평범한 인간으로 범사에 기뻐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복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내 아이들이 공부 잘하는 사람으로 자라나기 보다는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원한다. 기쁨이야말로 우리들을 어떠한 슬픔이나 불행으로부터 지켜주는 보루라고 나는 믿는다.
또한 기쁨이 담긴 가슴은 포근하며 기쁨이 담긴 눈물은 따뜻하다. 자신과 가족, 그리고 이웃에 대해 사려깊은 마음을 갖게 해주는 것이 기쁨을 아는 가슴이 아닐까 싶다.
그 기쁨이 마침내 어떠한 불행 속에서라도 살아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기뻐할 수 있는 기쁨으로 성숙되기를 나는 소망한다.
나는 또 내 자식들이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정직에는 많은 대가들이 따른다. 평생을 정직하게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직 되게 살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세상일이란 묘한 것이어서, 거짓을 행하는 사람은 늘 거짓을 하지 않으면 못살게끔 되어 있고, 또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정직하게 살아가더라도 그다지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게끔 되어있다. 이래도 살고, 저래도 살 바에야 정직하게 사는 편이 얼마나 더 현명한 삶의 방법인가?
그리고 나는 또 내 아이들이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나 가길 바란다. 사랑의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우리가 기대할 거라곤 별로 없다. 나는 사랑하는 것도 일종의 능력 이라고 믿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따라서 사랑이란 저절로 개화하는 식물이 아니라, 정성으로 가꾸고 돌보아야 하는 화초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버려두면 시들고 황폐해 진다. 그러므로 땀과 정성을 많이 쏟아 가꾸는 사람만이 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랑의 결실을 거둘 수 있는 법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내 아이들이 용기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자신과 남의 권익을 지키는데 용기가 없다면 그것을 결코 바람직한 삶이 되지 못할 것이다.
인생의 매듭에서 고통이 복병처럼 덮쳐올 때 용기가 없다면 어떻게 그 난관을 극복할 수 있겠는가? 불의와 과감히 맞설 수 있는 용기, 타의의 고통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는 용기, 일신의 안락을 초개처럼 버리고, 보다 큰일을 위해 투신할 수 있는 용기, 그러한 용기는 얼마나 아름다우며 감동적일 것인가.
많이 배울수록 냉혈과 책모로 가득한 인간으로 변질되어 가는 이 살벌한 세태 속에서 진정 내 자식은 어떻게 길러야 될 것인가 긴 밤 지새워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