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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 (하)

관리자 기자
등록일 2009-05-08 21:12 게재일 2009-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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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린다… 바라본다… 삶이 주는 감동의 리얼리티

시종 침묵과 감정적 절제 속에서 흘러오던 영화는 느닷없고 난폭하게 끝을 맺는다. 여자를 떠나보내던 남자는 달려오는 기차를 피하지 않는다.


여자는 남자의 죽음을 충격과 고통 속에서 바라본다. 그런 점에서 ‘궤도’는 트라우마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남자는 어릴적 기찻길 사고의 경험을 자신으로부터 떼어내지 못한다. 그의 꿈속으로 피 묻은 옷자락과 철로가 들어온다.


남자가 안고 사는 트라우마의 정체가 무엇인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명확해지는데, 그것은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된 것이고, 남자는 어머니의 죽음을 방조한 것처럼 보인다. 그의 어머니도 들을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장애인이었다.


어머니는 달려오는 기차에 변을 당했고, 어릴 적 남자는 기차가 오고 있음을 어머니에게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남자는 어머니와 같은 장애를 가진 여자로 인해 그리고 그 여자를 향한 감정으로 인해 혼란에 빠져든다.


여자가 떠나는 날, 남자는 자신을 소멸시킨다.


김광호 감독은 자신을 소멸시키는 남자의 행동에 대해 ‘해탈방식’이라는 표현을 썼다. 어머니에게 돌아가는 결론 말고는 다른게 없지 않겠는가 하면서. 감독의 표현과 구상대로라면 이 영화는 어머니에 대한 죄의식을 어머니의 죽음과 같은 방식으로 선택함으로써 해소하는… 아니, 감독의 말대로 번뇌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된다. 그가 사랑한 것은 향숙이라는 여자가 아니라 향숙으로 환생한 어머니인 것이다.


그러나 남자의 마지막 선택을 여자의 떠남으로 인한 상실감의 발현이라고 본다면 그동안 영화 속에서 은밀하게 형성된 두 남녀의 교감은 좀 더 설득력을 얻게 된다.


세상의 경계와 편견을 스스로의 고립으로 맞서 온 남자가 비로소 여자에게 마음을 내보였을 때 맛본 삶의 온기에 대한 기억은 여자의 떠남으로 인한 상실감을 더욱 감당할 수 없게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이 영화는 시점쇼트와 롱테이크, 롱쇼트를 위주로 한 매우 독특한 표현방식과 흥미로운 전개방식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응집력이나 개연성은 상대적으로 느슨한 편이다.


특히 남자의 심리적 트라우마에 대한 정보로써 표현된 쇼트들은 애매성을 심화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면 영화 도입부에 남자의 집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아이의 시점으로 보이는 남자의 집 그리고 문을 열고 나오는 남자의 모습은 멀리 찍은 상태이고 마찬가지로 아이를 바라보는 남자의 시점쇼트 역시 롱쇼트로 이루어졌다.


감독은 이 장면을 남자의 장애에 대한 우회적 표현으로 사용했다고 했다.


말하자면 아이는 어릴 적 남자의 모습으로서 과거와 현재의 남자가 서로를 응시하는 것으로 설정된 것이다.


그러나 이 장면만으로는 아이와 남자를 연결시켜 볼 수 있는 끈이 매우 약하고, 멀리 바라보는 상황만으로는 어떤 의미인지를 읽어내기가 어렵다.


차라리 이 장면을 세상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거리로서 알레고리화한 인서트라고 생각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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