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산상수훈(山上垂訓)과 청정 법신이 무엇이 다른가?’
나무들이 수척해져가는 비로전 앞에서 불타가 묻자
예수가 미소를 띠며 답했다.
‘나의 답은 이렇네.
마음이 가난한 자와 청정 법신이 무엇이 다르지 않은가?’
비로자나불이 빙긋 웃고 있는 절집 옆 약수대에
노랑나비 하나가 몇 번 앉으려다 앉으려다 말고 날아갔다.
불타는 혼잣말인 듯 말했다.
‘청정 법신보다
며칠 전 혼자 나에게 와서 뭔가 빌려다
빌려다 한 마디 못하고 간 보통 법신 하나가
더 눈에 밟히네.’
무엇인가 물으려다 말고 예수는 혼잣말을 했다
‘저 바다 속 캄캄한 어둠 속에 사는 심해어들은
저마다 자기 불빛을 가지고 있지.’
어디선가 노란 낙엽 한 장이 날아와 공중에서 잠시 떠돌다
한없이 가라앉았다.
- 꽃의 고요(문학과지성사·2006)
황동규 시인이 서울대학교를 정년퇴임하면서 펴낸 ‘꽃의 고요’(문학과지성사·2006)는 무르익은 시인의 사상적 진경(進境)이 향(香)처럼 타오르고 있는 시집이다. 석가와 예수, 원효를 등장시켜 선문답 같은 형식으로 생의 비의(秘義)를 탐색하고 있는 그의 시적 작업은 새롭고도 웅숭깊은 것이다. 황동규의 이런 시적 상상력은 부처와 예수,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면서 아니 그것을 지워내면서 구체적인 사람의 자리에서 생의 등불을 켜고 있다. 시 속에 나오는 석가와 예수의 말이 얼마나 인간적이고 따스한가. 산상수훈과 청정 법신보다 보통 법신이 더 간절하고 소중하다는 깨달음, 이는 유마경에 나오는 지극한 자비(慈悲)의 정신과도 통하는 이야기다. 석가가 80세에 입적하면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남긴 법문이라는 ‘自明燈 法明燈’(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아라)은 “저 바다 속 캄캄한 어둠 속에 사는 심해어들은/저마다 자기 불빛을 가지고 있지”라는 예수의 혼잣말과 그대로 통한다. 우리는 살아 있을 동안 ‘저마다 자기 불빛’을 스스로 찾고, 또 그것을 더욱 곱게 피워나갈 일이다.
해설<이종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