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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白山) 여성백일장

김시종 기자
등록일 2009-05-07 21:32 게재일 2009-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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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종 <前 문경중 교장 >


‘왕권강화의 대명사’인 조선 태종때에 한강에 거북선이 처음 나타났고 태종 재위중인 1414년 음력 7월17일에, 이땅에서 맨 처음으로 백일장(白日場)이 실시됐다.


청천백일하에 당당하게 글재주를 겨루게 한 것이다. 백일장 입상자에게는 글 잘짓는 것을 현창했을 뿐, 벼슬은 주지 않고 백일장을 실시한 목적은 문예장려를 위해서 했던 것이다.


올해로 25회를 맞는 백산(白山) 여성백일장은 1985년 6월6일, 당시 점촌시 영신숲에서 실시됐다. 지금까지 줄곧 같은날(매년 현충일), 같은 장소(문경시 점촌동 영신숲)에서 열리고 있다.


백산여성백일장 출산의 산파역은 당시 문경고 교사로 점촌문인협회장을 맡고 있던 필자 몫이었다.


1984년 10월20일경 문경고등학교 가을체육대회 날. 필자가 단축 마라톤 도로 심사를 맡게 되어 백산 김정옥 선생의 가마 앞에서 경기학생 지도를 하게 됐는데 세운지 얼마 안되는 ‘영남요’란 팻말이 눈에 확실하게 클로즈업 됐다.


무심결에 안으로 들어갔더니 신라시절 도공같은 순박한 중년남자가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첫눈에 무던한 사람임을 감지했다.


통성명도 채 마치기 전에 “우리같이 백일장 한번 해 봅시다.”했더니, “그렇게 하지오.”하며 첫 마디에 OK다. 허생이 변부자를 처음 만나 다짜고짜로 돈 만냥을 변통해 달라던 고사(故事)를 너무도 닮았다.


시작이 좋으면 모든 것이 다 좋게 마련이다. 하필이면 왜 여성백일장을 하게 됐을까?


지금부터 24년전인 1985년만 해도 오늘날만큼 여성의 사회활동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많이 부진했었다.


경북도내에는 독립된 여성백일장은 하나도 없었다.


백일장 심사는 내가 맡고, 백일장 상품은 7대째 전통도자기를 빚어오신 백산 김정옥(白山 金正玉) 선생이 맡았다. 농사말고는 우리나라에 세습되어온 직업인이 없는데, 백산 선생은 우리나라 유일의 7대를 대물림한 전통도예가 였다. 굶주리고 천대받으면서도 7대 200여년을 손에서 진흙을 놓지 않았으니, 얼마나 장한 집념의 화신인가.


‘초인적 인내’란 말이 백산의 도예가문을 위해 있는 말 같다.


1985년 6월6일 제1회 白山여성백일장이 열렸다. 30명이 넘는 여류문학도들이 영신숲 녹음을 파라솔 삼아 주옥편을 버무리고 있었다.


이 나라를 위해 고귀한 젊음을 바치신 고귀한 영령을 달래는 현충일임에도 이 날을 아예 소풍일로 못박은 종교단체, 가무음주를 일삼는 몰지각한 친목계가 비일비재한 세상에 차분한 자세로 주옥편을 빚으려 심사숙고하는 여류문학도들의 모습은 진지하게 느껴졌다.


백일장 경연부문은 시와 수필, 두 분야였다.


백일장이라면, 주어진 제목 1∼2개밖에 안되어 생각할 틈이 너무 좁은 게 흠인데, 백산여성백일장은 처음부터 제목 열 개를 제시하여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여 경직된 백일장의 결점을 없앴다.


창작소요시간도 세 시간이나 주고, 감방같은 원고지 대신, 백지를 배부하여 칸 메우는 답답함에서 해방시켰다.


제1회 시부문 최우수 수상자는 영남대 작곡과 3학년 재학중이던 이영숙 양이었다. ‘우리집’이란 시였다. 얼마 뒤 이영숙씨는 우리나라 최고권위의 시문학신인상에 ‘동성로의 비’가 당선되어 백산여성백일장의 맏이로서 백산여성백일장의 주가를 높여주었다.


당시 심사위원은 김춘수 시인이었다. 이영숙 시인이 백산백일장출신 1호 시인이 되었고 뒤이어 고선희 시인, 변희자 시인, 정재옥 시인이 등단하여 백산여성백일장을 창설하고 후원을 확실하게 해주는 백산 김정옥 도예명장의 선택을 더욱 빛내주고 있다.


올해까지 백산여성백일장 참가자는 연인원 1천여명을 헤아리고 도예명장(名匠) 백산 김정옥 사기장의 국보급 전통도자기 상품을 수여받은 여류문사들이 어느새 200명을 헤아린다. 영강의 푸른물결이 손짓하는 문경 점촌 영신숲에서 올해 6월6일 오전 10시부터 제25회 백산여성백일장이 열린다.


권위있는 중진문인의 공정한 심사와 국보급 도자기 상품이 저력있는 여류들을 기다리고 있다. 백산여성백일장은 전국단위의 백일장이다.


대학 국문학과나 문예창작과를 지망하는 경향각지의 여고생들은 잊지 말고 백산여성백일장을 노크해 주기 바란다.


예술적 향기가 담뿍 풍기는 값비싼 상품을 아끼지 않는 백산 김정옥 사기장님과 8대 전승 도예가 김영식님, 높은 안목으로 심사를 계속 맡아오신 정재호 선생, 서경희 선생의 공이 돋보이는 바 있다. 이 좋은 글잔치에 만천하의 여성문학도들이여! 사뿐히 납시어 보시라. 기회와 행운은 그대의 것일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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