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바다 외나로도 고갯길에서
초분 몇을 보았다
파도소리 들으며 오손도손 볕을 쬐는
풀무덤들이 내게는
왜 세 척의 배로 보였는지
바다를 보고 싶어서
조기떼 우는 소리에 뒤척이고 싶어서
돌 구르는 언덕 위에 앉아 있는
통나무 위에 관을 얹고
볏짚날개를 마른 돛처럼 펼치고
금방이라도 바다를 향해 떠날 것 같은
푸른 생솔가지 꽂고
저승길 저어가는 배처럼 보였는지
살 썩은 물은 땅으로 흘려 보내고
마른 뼈만 마른 뼈만
바람에 지푸라기 날리며 가는 배
- 사라진 손바닥(문학과지성사·2004)
우리 시단에서 따스한 모성적 감성의 정서를 감칠맛 나게 노래 잘 하는 이로 알려진 나희덕 시인. 생의 무슨 힘겨움이 있어 외딴 남쪽 바다 외나로도 고갯길을 혼자서 오르고 있는가. 거기서 기어코 또 초분(草墳)을 보고 말았는가. ‘초분’은 남해 섬 지방에서 가끔 행해지는 특이한 장례 풍속인데, 매장하기 전에 갖는 임시 무덤이다. 시의 표현대로 “통나무 위에 관을 얹고/볏짚”을 둥그렇게 덮어놓은 것이다. 이 초분을 나희덕 시인은 “저승길 저어가는 배”로 본 것이다. 그래서 “볏짚날개를 마른 돛처럼 펼치고”라는 빼어난 비유를 구사하고 있다. 저기로 가는 배가 어디 저 초분뿐이겠는가, 우리네 생이 바로 저기로 가는 배가 아닌가. 삶(生)도 죽음(死)도 어디로 가는 중이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을 때 싸우지들 말고 서로 사랑하고 노래하며 살다 갈 일이다.
해설<이종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