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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딸기의 교훈

김만수 기자
등록일 2009-05-06 20:01 게재일 2009-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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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만수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경북분원 주임교수>


아마 40여년 전의 일로 기억된다. 태어나서 가장 멀리 간 곳이라곤 초등학교가 있는 면소재지가 고작이었던 나로서는 군 소재지가 있는 읍내 구경을 한번 해보는 것이 그야말로 꿈에도 소원인 때가 있었다.


그래서 장날만 되면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울고불고 하면서 졸랐으나 그 꿈은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당시 어머니의 주장인즉 “집에 가만히 있으면 맛있는 과자도 사다 줄 것인데 어디라고 왕복 60리 길을 감히 따라 나서려는 것이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이러한 설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장장 두 서너 달여간 떼를 쓴 끝에 결국에는 그 꿈을 이루고야 말았는데 막상 따라 나서고 보니 어머니의 그동안의 만류가 괜한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 때의 기억들이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것은 물론 나에게 있어서 최초의 읍내 나들이였다는 감회도 섞여 있었지만, 그보다 어느 부잣집 화장실벽에 걸린 휴지 대용의 소책자가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으며, 또한 그 책의 내용이 내 생의 마디마디에서 커다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일이라 그 부잣집이 누구의 집인지, 그리고 그 책자의 제목이 무엇인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내용은 대충 이러하다.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산딸기를 따기 위해 집을 나서려는데 아들에게 아버지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산에 가면 많은 딸기 넝쿨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꼭 명심해야 할 것은 친구들이 한곳에서 꾸준히 딸기를 따지 않고 다른 곳의 딸기 넝쿨에 욕심을 내어 우왕좌왕하며 쫓아다닐 것이다. 그러나 너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한곳에서 딸기를 다 딴 다음 다른 넝쿨로 자리를 옮겨야 한다.”는 간절한 부탁이었다.


아버지의 말씀을 뒤로 하고 총총걸음으로 친구들과 함께 목적지에 당도해 보니 정말 탐스러운 딸기들이 어린 아이들을 반기고 있었다.


아이들은 탄성을 지르며 딸기넝쿨을 향해 질주했고, 아버지의 말씀처럼 친구들은 남들보다 굵고 잘 익은 딸기를 많이 따기 위해 이 넝쿨 저 넝쿨을 급히 쫓아다니며 극성을 떨었다.


이 소년도 처음에는 친구들과 같이 행동하려고 했으나,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라 친구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한 넝쿨에 달린 딸기를 다 딴 다음 다른 넝쿨로 자리를 옮겼다.


이 소년의 바구니가 탐스런 딸기로 가득 차질 무렵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큰 딸기를 따기 위해 다음 넝쿨을 향해 줄기차게 쫓아다니던 친구들이 온 얼굴과 팔다리가 가시넝쿨에 긁혀 피멍이 든 채 자기가 차근차근 따 나왔던 자리로 다시 되돌아오는 것이었으며, 더더욱 놀라운 것은 자기의 바구니는 가득 차 있는데 반해 친구들은 이제 겨우 바닥에 몇 개뿐이었으며, 그나마 태반이 흙투성이에 온전한 것이 없었다.


이 소년은 그제서야 아버지의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었고, 이 후 그 소년은 성장하면서 이 ‘산딸기의 교훈’을 거울삼아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여 주위의 어떤 유혹도 뿌리치고 꿋꿋하게 한길로 매진한 결과 나중에는 그 방면에서 최고로 각광받는 인물이 되었다는 것이 이 산딸기라는 글의 줄거리다.


이 ‘산딸기’ 이야기는 우리에게 하나의 목표를 지향하며 확고한 신념으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어떠한 역경에 처하더라도, 또한 그 길이 어떠한 길이었다 하더라도, 자신의 생애를 후회하는 법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과 그러한 사람은 비록 지금의 삶이 고달프다 해도 죽음에 이를 때까지 자신이 쏟은 노력에 대한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했다 해도 최선을 다했다는 스스로의 행복감에 충분한 만족감과 기쁨을 누릴 것이며, 그런 사람은 쉽사리 좌절하지 않으며, 또한 남을 탓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일깨워 주고 있다.


일찍이 공자께서도 이르기를 “어떤 일을 선택함에 있어 신중을 기하되 이미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절대 후회하거나 중도에 의리를 저버리지 말고 지속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현실을 보면 그리하지가 못하다. 자신의 장래가 걸린 진로문제를 쉽게 결정하고 얼마 안 가서 후회하거나, 작은 유혹에 소탐대실(小貪大失)하여 직장동료를 팽개치고 이 곳 저곳을 옮겨 다니는 철새주의 인간이 많고, 근면 성실하게 노력하여 부를 쌓으려 하기 보다는 투기와 투전으로 일확천금을 꿈꾸는 한탕주의자들 때문에 선량한 다수를 비탄에 빠지게 하는 경우가 많다.


이 난세에 우리는 봄바람에 흔들리는 수양버들이 아니라 정도의 바탕 위에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나에게 주어진 책무를 충실히 이행해 나가는 것, 이러한 삶이 가장 보람되고 행복된 삶임을 깨달아야 한다.


어린 시절 필자가 화장실 안에서 뜨거운 감명을 받았던 산딸기의 교훈이 길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작게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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