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앞에 나는 늘 새벽 여울입니다
그 여울 소리 끝에 불 켜든 단청입니다
다 삭은 풍경(風磬)입니다, 바람입니다, 춤입니다
- 열린시조(1998년 가을호)
단형시조 박기섭의 ‘춤’을 거듭 소리 내어 읽는다. ‘춤’이라니, 무슨 춤인가? 그 춤의 내용은 무엇인가? 가슴속에 박기섭의 이 노래를 자꾸자꾸 쟁여놓으니 서러움과 슬픔의 강물이 차올라 숨을 쉴 수가 없을 것만 같다. 3장 6구의 이 짧은 단시조에 “-입니다”가 놀랍게도 다섯 번이나 반복되고 있다. 그것은 “그대 앞에 나”의 모습인데, 새벽 여울과 불 켜든 단청이고 그대를 간절히 기다리며 사모하는 풍경(風磬)과 바람, 춤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 모습이 전부 종장 첫 음보 ‘다 삭은’에 연결되어 있다. 당신이 돌아오기를 오래도록 기다리고 그 사랑을 갈구하다 다 삭은 풍경이고, 바람이고, 춤이다. 그대를 직접 찾아 나서지는 못하고 그대 돌아오기만을 오매불망(寤寐不忘) 기다리는 다 삭은 풍경의 시적 화자가 추는 춤이 못내 너무 서럽다. 사실 종장의 ‘풍경(風磬)’이나 ‘바람’ 또 초장의 ‘새벽 여울’과 중장의 ‘불 켜든 단청’은 모두 같은 의미이다. 그대를 기다리며 다 삭아 점점 스러지는 시적화자의 처절한 몸부림, 바로 춤 그것이다. 사랑과 그리움의 아픔을 새벽 여울과 그 여울 소리 끝에 불 켜든 단청으로 또 다 삭은 풍경과 바람, 춤으로 변주하며 절절하게 그려내는 박기섭의 언어 춤사위가 놀랍다. 우리 현대 시조의 아름다운 결을 되살리려 끝없이 공부하는 박기섭 시인. 청도군 각북에 있는 그의 집 행옹당(杏甕堂)으로 찾아가고 싶다. 가서 그의 서재인 묵수재(默守齋)의 책상머리에 앉아 이런 놀라운 언어의 춤사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가를 또 묻고 싶다.
해설<이종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