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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잔인한 달

류기찬 기자
등록일 2009-05-04 21:12 게재일 2009-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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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우리를 따뜻하게 했었다.


망각(忘却)의 눈으로 대지(大地)를 덮고


마른 구근(球根)으로 가냘픈 생명(生命)을 키웠다.


여름은 소나기를 몰고 슈타른 베르가제 호수를 건너와 우리를 놀라게 했다.


우리는 주랑(柱 廊)에 머물렀다가


햇빛이 나자 호프가르텐 공원에 가서


커피를 들며 한 시간가량 지껄였다.


내가 러시아 사람이라고요. 천만에 난 리투아니아에서 난 순수한 독일인 인데요.


어렸을 때, 사촌 태공(太 公)집에 머물렀었는데


사촌은 나를 썰매에 태워 데리고 나간 일이 있었죠.


난 무서웠어요, 마리 마리, 꼭 붙들어 하고 그는 말했어요.


그리곤 쏜살같이 내려갔지요.


산(山)에 오면 마음이 편안하지요.


밤에는 대개 책을 읽고, 겨울엔 남(南) 쪽으로 갑니다. 〈후략〉


1948년 노벨 문학상을 탄 영국의 시인이며 평론가이자 극작가인 T.S 엘리엇(1988-1965)이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발표한 서사시 황무지(荒蕪地. The Waste Land )에 나오는 1부 내용중 한 부분이다. 이 시는 총 5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에 그 유명한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싯구가 나온다.


황무지는 정신적 메마름, 인간의 일상적 행위에 가치를 주는 믿음의 부재(不在), 생산이 없는 성(性), 그리고 재생(再生)이 거부된 죽음에 대해 쓴 시다. 엘리엇은 이 시에서 전후(戰後) 서구의 황폐한 정신적 상황을 황무지로 형상화해 표현하고 있다고 평론가들은 전한다.


흔히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다.


이는 유독 그해 4월에 악재가 겹치거나 일이 꼬이고 안 풀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2009년 4월도 예외는 아니었다. 검찰에 소환된 노무현 전 대통령 문제도 그렇고 2009프로야구 시즌 초반 스포츠 TV 중계 파동에 이은 빈볼시비, 마른 가뭄으로 인해 전국의 산야를 태운 산불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악재가 낀 한 달이었다.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은 ‘4월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잔인한 달’ 이 될 것이라고 말했듯이 노 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오후 결국 검찰에 소환돼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로 검찰에 불려나오는 ‘불행한 전직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5공 비리 청문회에서 혜성처럼 등장, 극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되는 등 드라마 같은 이력의 노 전 대통령이 이번에는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서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봉하마을 전체가 잔인한 4월이 됐다.


야구팬들은 지난 3월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무대에서 보여준 한국 야구의 ‘투혼’에 한국인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감동하고 기뻐했다.


그러나 야구팬들은 4월 한달동안 화가 많이 났다.


이는 지난달 4일 2009프로야구가 개막된 이후 중계권을 놓고 얽힌 매듭이 지난 25일에야 일부 풀려 한고비를 넘겼지만 23일 문학경기장에서 채병용의 투구에 롯데 주장 조성환이 얼굴을 맞아 전치 6주 이상의 중상을 당하면서 롯데 팬들의 비난을 사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다 성적 부진과 조성환의 부상으로 잔뜩 격앙된 롯데 팬들은 구단 게시판과 포털사이트 야구 게시판 등에 SK를 비난하는 의견을 잇달아 개진하고 있어 분노가 쉽게 풀릴 기미는 아니다. 야구장 안팎이 어수선하다.


4월에는 또 올 들어 가장 많은 산불이 발생, 이로 인해 국제 규격의 축구장 569개 면적에 달하는 숲이 잿더미가 됐다.


4월을 포함해 올 들어 발생한 산불은 총 367건(지난달 13일 산림청 집계)으로, 피해 면적만 427ha에 달하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192건·122ha)과 비교해 발생건수는 1.9배, 피해 면적은 3.5배 증가한 것이다. 특히 지난달 6일 대구와 칠곡 일대에서 발생한 산불은 민가까지 위협해 주민 4백여 명이 긴급대피해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등 불안에 떨었다.


이는 당시 행정자치부에서 내려 진 ‘산불방지 특별비상경계령’을 무색게 했다. 국민 모두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며 또 당국이 산불 방지를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산불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것은 역시 국민들이 안전의식 불감증 때문이다. 거의 대부분의 산불은 시, 도민들의 사소한 부주의에서 비롯됐다.


잔인했던 4월은 갔다. 이제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 왔다.


엊그제 부처님오신날에는 전 국민의 가정에 부처님의 자비가 가득했고, 5월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15일 스승의 날, 18일 성년의 날, 21일 부부의 날 등 좋은 날들만이 기다리고 있다. 즐거운 5월을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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