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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손꼽는 50代 경찰관

김남희기자
등록일 2009-05-04 20:14 게재일 2009-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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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때가 묻어 있는 검은색 지갑. 지갑 속에는 한 어린이 사진 한 장과 국민연금가입증서, 주민등록증, 그리고 잔고 없는 예금통장이 들어있다. 지갑 속 물건들은 빛바랜 흔적이 가득했다. 이 지갑은 세상을 떠난 한 남자의 유품이다.


그리고 이 유품을 묵묵히 10년째 보관해온 한 사람이 있다. 그는 현재 포항북부경찰서 죽도지구대장으로 근무중인 황보호용(52) 경감.


황보 경감은 인사이동이 있을 때마다 그 어떤 것보다 가장 먼저 이 지갑을 챙긴다고 한다.


지갑의 주인은 누구이며, 도대체 무슨 사연이 숨어있는 것일까.


약 10여년 전인 1998년 초 여름께. 황보 경감이 울진 읍내 파출소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자전거를 타고 읍내 순찰을 돌던 중 한 아이를 만나게 됐다.


“아이가 갑자기 저를 부르더니 ‘아버지가 며칠째 아무 말 없이 잠만 자고 있다’고 하더군요.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어 급하게 들어가 봤죠.”


아이 아버지는 마치 잠을 자듯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있었지만, 숨진 지 3일 이상은 돼 보였다.


아이의 이름은 김정호(당시 9세). 정호는 몇 년 전 부모가 이혼해 아버지와 단둘이 생활하고 있었다. 당시 정호 아버지는 시외버스 운전기사였으나, 잦은 음주로 인해 간 기능 저하로 숨지게 됐다.


어린 정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밀린 두 달치 월세와 현금 3만원, 국민연금가입증명서와 정호 사진이 든 지갑 하나.


황보 경감은 사체와 소지품 등을 인수할 유족을 찾아봤지만 아무도 찾지 못했다. 아이를 위해 그는 스스로 상주를 자처했다. 정호 아버지를 땅속에 묻고 난 후, 어린 정호를 위해 아이 어머니를 찾았다.


“정호 어머니는 서울에서 재혼을 했더군요. 아이에 대해 말하자, 현재 자신의 생활 처지로는 곤란한지 거절하더라구요. 어린 아이 혼자 놔둘 수는 없었고, 참 막막했죠.”


하지만, 하늘도 정호가 처한 상황을 알았을까. 당시 울진 읍내에서 정호를 양자로 삼아 보살펴 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동네에서 소위 ‘유지’로 불리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헤어졌다. 황보 경감은 먼 훗날 정호에게 아버지의 흔적을 전해줄 생각으로 지갑을 챙겼다.


지갑 속에 든 국민연금가입증서를 본 그는 연금보험공간에 알아본 결과 매월 8만원 정도를 정호가 받을 수 있지만, 미성년자라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정호가 성년이 됐을 때 8여년치 연금을 일시에 수령할 수 있다고 했다.


이후 황보 경감은 가끔 정호를 만났지만, 봉화경찰서 발령 이후 다시는 정호를 보지 못했다.


그 후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드디어 올해 정호는 20살이 된다.


“정호의 생일은 어린이 날이에요. 올해 5월5일이 지나면 아버지가 남긴 연금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다시 정호를 만난다면 든든한 멘토가 되어주고 싶다는 황보 경감.


“정호 소식을 수소문해보니 현재 대구에서 생활 중이라고 합니다. 연금의 경우에는 증서가 없어도 조회를 통해 찾을 수 있다더군요. 하지만 정호에게 연금보다 더 소중한 아버지의 흔적이 깃든 지갑을 전해 주고 싶어요.”


/김남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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