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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명활산 지역

이용선기자
등록일 2009-05-01 21:07 게재일 2009-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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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를 답사할 때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답사장소를 정하고 답사에 걸리는 시간을 예상하는 것일 것이다. 특히 경주 같이 수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는 곳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지난번에 소개한 명활산성이 있는 명활산 주변에도 많은 문화재와 유적지가 있다. 우선 경주 IC에서 보문단지 진입로 사거리의 구황교 직전에 구황동 모전석탑의 석탑재가 남아 있는 구황동사지가 있고, 보문단지 진입로로 들어서서 500여m 정도 진행하면 우측으로 보문리 방향 도로가 있는데, 이 마을에 진평 왕릉과 보문사지 등이 있다.


이곳을 답사한 후 지난 번에 소개한 명활산성을 답사하고 엑스포 공원 인근의 천군리사지와 삼층석탑까지 발길을 이으면 별 무리 없는 하루 답사 일정이 이뤄진다.


신라의 제26대 진평왕은 제24대 진흥왕의 장손이다. 진평왕의 아버지인 동륜태자가 일찍 죽자 동생인 사륜태자가 제25대 진지왕이 되었으나, 즉위 4년 만에 폐위를 당해 동륜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면서 제26대 진평왕이 된다. 재위 기간은 시조인 박혁거세 다음으로 오랜 54년 동안 왕위를 이어갔다.


왕릉의 외부 모습은 흙으로 덮은 둥근 봉토분으로서 무덤 밑 둘레에는 자연석을 사용해 보호석열(石列)을 갖춘 것으로 여겨지나 지금은 몇 개만이 확인되고 있다. 이와 같이 자연석을 이용해 보호 석열을 마련한 예는 삼국기 말기와 통일신라 초기에 보이는 형식이다. 왕릉의 지름은 36.4m, 높이는 7.9m이다. 진평 왕릉은 대부분의 신라 왕릉처럼 정확한 주인은 알 수 없는 상태다. 1730년 이전에는 전하는 바가 없던 이름 없는 고분이었으나, 당시에 왕릉 11기가 추가로 늘어날 때 진평 왕릉으로 지정됐다.


진평 왕릉에서 남쪽으로 500m 발걸음을 옮기면 보물 제910호인 보문동 연화문 당간지주(普門洞蓮華文幢竿支柱)를 만나게 된다.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지상으로 노출된 높이가 146cm이다. 현재 당간지주의 아랫부분이 매몰되어 있어서 기단 하부의 구조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현재까지 원위치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동서로는 62cm의 간격을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정상부분 안쪽에 있는 너비 13cm의 큼직한 간구(杆溝)는 당간을 고정시켰던 장치다.


특히, 이 당간지주 상부 외측 면에 설정된 사각형 안에는 지름 47cm의 8엽연화문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와 같이 당간지주에 연화문을 조각해 외부를 장식하는 예는 이곳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연꽃 문양 가운데 여덟 장의 꽃잎을 가진 8엽 연꽃은 불교 교의와 신앙 체계를 나타내는 상징 형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태장계 만다라의 십삼원(十三院) 가운데 하나인 중대팔엽원을 허균은 “8엽 연꽃의 중앙은 불성자체인 대일여래를, 주변 8엽은 법신불의 방편으로 나타난 네 부처와 네 보살을 의미하는데, 꽃잎이 모두 중심에 붙어 있어 네 부처와 네 보살은 결국 하나의 법으로 귀결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는 불성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음을 8엽의 심장 곧 마음의 연꽃에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라고 해석했다.


연화문 당간지주의 제작연대는 8세기 중엽 이후로 추정되며,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 중에서 가장 특수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작품이다.


다만, 이 당간지주의 소속 사원이 동남쪽에 터가 남아있는 보문사였는지, 아니면 별개의 사찰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가 않다.


천군리 사지는 현재 보문 단지 내에는 경주 세계문화엑스포와 서라벌초등학교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의 삼층석탑 2기가 남아있다. 절의 이름은 현재 알 수는 없지만, 석탑의 존재로 미루어 볼 때 통일신라인 8세기 중엽에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이 곳에 있는 동·서삼층석탑은 보물 제168호로 동탑 6.73m, 서탑 7.72m이고, 화강석으로 조성됐으며 양식이 동일한 2기의 석탑이 동서로 놓여 있다.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의 양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데, 하층기단의 지대석 밑에 다시 한 장의 지반 석을 놓은 것이 특이하다.


지대석은 8석으로 짜여 있고 다시 그 위에 8석으로 된 중석과 갑석을 놓았다. 탑신에 비하여 기단부가 장중한 모습이나 아직 신라 초기 석탑의 건실함을 잃지 않고 있는 뛰어난 수작에 속한다.


건립 연대는 8세기 중엽 경으로 추정되며, 1938년에 천군리사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하면서 수리 및 복원을 하였는데 이때 두 탑 모두 3층 옥신 상부 중앙에서 사리공이 확인됐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보문동 연화문 당간지주의 모습. 지상으로 노출된 높이가 146cm다. 당간지주의 아랫부분이 상당부분 매몰돼 있어서 기단 하부의 구조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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